[Close Up]삼성전자 성공 연구 <下> “마음을 읽어라”… ‘말하는 기업’에서 ‘듣는 기업’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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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에 귀 열었다… 창조경영도 열렸다

“완전히 속았습니다.”

애플이 1년에 한 번이라는 주기를 어기고 최근 갑작스럽게 4세대 아이패드를 발표하자 8월 3세대 ‘뉴 아이패드’를 구입한 소비자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미국 쿠폰 거래 사이트 쿠폰코드포유가 설문 조사한 결과 애플 기기 소유자의 83%가 “속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애플은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절대 내놓지 않겠다”고 했던 7인치 태블릿PC도 선보였다. 모두 한 해에 수십 종의 모델을 내놓으며 변화무쌍한 소비자의 수요를 만족시키는 삼성전자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애플의 변화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 시장의 ‘게임의 룰’을 삼성전자가 바꾸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삼성전자가 게임의 룰을 바꿀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소비자의 마음을 가장 잘 읽었다는 점’을 꼽는다.

○ ‘충성스러운 소비자’의 탄생

과거 삼성전자는 좋은 제품을 값 싸게 빠르게 만드는 기업이었다. ‘팬’이 없었다. 자발적으로 브랜드를 사랑하고, 나쁜 얘기가 나오면 알아서 변호해주는 충성스러운 소비자는 애플이나 구글에만 있었다.

하지만 최근 1년 사이 확실히 달라졌다. 지난해 나온 ‘갤럭시 노트’의 개발 과정이 대표적 사례다. 경쟁 제품인 ‘아이폰’의 화면은 3.5인치에 불과했다. 이에 앞서 ‘스마트폰과 태블릿PC의 중간’이라고 홍보했던 델의 스마트폰 ‘스트릭’(5인치)은 시장에서 참패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삼성전자는 5인치의 ‘거대한’ 스마트폰을 다시 만들었다. 과거 실패했다는 평을 받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스마트폰을 연상시키는 스타일러스(전자펜)까지 붙여 넣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태블릿과 스마트폰, 둘 다 들고 다니기 싫었던 소비자는 자신들의 요구를 녹여 낸 제품에 열광했다. 갤럭시 노트는 지금까지 1000만 대 이상 팔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우리가 말하지 않고 소비자의 목소리를 듣기 시작하면서 달라졌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소비자들이 말해주고 있었다”고 했다.
▼ 강점 지키며 변신 ‘하이브리드 경영’이 핵심무기 ▼

○ ‘삼성전자식’ 혁신 과정


삼성전자는 약점을 분석했다. 마케팅팀이 조사해 보니 스마트폰 소비자의 80%는 다음과 같은 네 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①TV와 신문, 인터넷 뉴스에서 신제품 소식을 듣는다. ②블로그 등을 통해 신제품 정보를 찾는다. ③‘페이스북 친구’ 등 소셜미디어 지인들의 제품 평가를 살핀다. ④사야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제품 판매처가 ‘검색되면’ 곧바로 실천한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①, ②단계는 누구보다 잘해왔다. 문제는 ③, ④단계였다. 소셜미디어의 평판이 좋지 않았고, 신제품 마케팅에 열중하느라 기존 제품 마케팅에 소홀한 나머지 정작 제품을 사려는 소비자들을 헤매게 만들었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들려오는 소비자의 목소리를 제품 개발에 충실히 반영했다. 마케팅부서에 신설한 소셜미디어팀은 페이스북과 트위터, 유튜브의 반응을 수집했다. ‘처음엔 너무 큰 것 같았는데 써보니 눈이 편해 좋다’ ‘갤럭시 노트로 삼각형을 그리면 삐뚤빼뚤해서 보기 흉하다’는 등의 의견이었다. 이는 연구개발(R&D) 부서부터 영업팀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서에 전달됐다. 김희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전략마케팅팀 부장은 “지금까지는 차별화된 제품을 내놓겠다는 야심으로 경쟁사를 쳐다보고 제품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이 제품을 과연 소비자가 좋아할지 마음을 알아내기 위해 팀을 운영하고 개발한다”고 말했다.

○ 강해지는 소프트 파워

삼성모바일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하루에 많게는 30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린다. 여러 경로를 통해 들어오는 소비자의 다양한 요구가 삼성전자 특유의 스피드와 하드웨어 경쟁력을 만나 ‘소프트 파워’가 한층 강해졌다.

‘애플은 운영체제(OS)를 업그레이드하면서 오래된 아이폰도 새것처럼 새 기능을 추가해준다’는 불만을 보고 삼성전자도 소프트웨어만 업그레이드해 스마트폰에 새 기능을 넣어줬다. 손으로 그린 삐뚤빼뚤한 도형을 반듯하게 바로잡아주는 기능도 기존의 불만사례를 참고해 반영했다.

이에 앞서 액정표시장치(LCD) TV의 백라이트 유닛 설계를 창의적으로 변경한 발광다이오드(LED) TV를 내놓아 더 얇고 밝은 TV를 원하는 소비자를 만족시킨 것도 소프트 파워와 하드 파워가 만나 탄생한 삼성전자식 창조다.

이런 변화는 궁극적으로 소비자들의 반응을 바꿔놓았다. 한때 스티브 잡스가 ‘카피캣’(모방꾼)이라고 비난할 정도였던 삼성전자는 소셜미디어 마케팅을 통해 팬들을 확보했다. 페이스북의 삼성모바일 페이지 팬은 1470만 명에 이른다.

김동원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비자의 의견을 하드웨어에 연결할 수 있는 역량을 바탕으로 미래학자 등의 이야기를 폭넓게 듣고 혁신적이고 미래지향적 제품 포트폴리오를 갖춰나간다면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대가 저문 뒤에도 성공을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 ‘시장 창조자’로 전략 전환


삼성전자는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종자)에서 ‘시장 창조자’로 전략을 전환하며 기존 제조업 문화의 단점을 벗어나려는 노력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애플을 추격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특허권 보호 등 컴플라이언스(규제 준수) 프로그램도 강조하고 있다. 사업을 진행하는 단계마다 법률 전문가들이 혹시라도 문제가 있는지 챙긴다. 이 업무를 맡은 전문가는 3년 사이 10배 이상으로 늘었다.

삼성전자는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안팎의 분석에 대응해 자율 출근제와 원격근무센터 운영 등 ‘워크 스마트’ 제도를 정착시키고 있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해 개인의 창의력을 극대화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런 강한 규제 준수 프로그램은 삼성 특유의 스피드 경영과는 어긋난다. 자율 출근제도 오전 6시 30분 출근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기존 강점을 지키고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는 하이브리드 경영을 삼성전자의 핵심 경쟁력 중 하나라고 꼽는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는 삼성전자가 대규모 조직이면서도 속도가 빠르고, 다각화와 전문화를 동시에 시도하는 등 ‘패러독스 경영’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HBR에 이 논문을 게재한 송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여러 기업의 장점을 결합해 자신만의 경영 스타일을 만들어낸 삼성전자가 앞으로 급변하는 시장에서 이런 ‘하이브리드 경영’을 잘 유지하느냐가 성공을 이어가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정진욱 기자 coolj@donga.com
#삼성전자#창조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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