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한국 고래잡이 추진’ 외신 보고 알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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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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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열 경제부 기자
유성열 경제부 기자
5일 아침 농림수산식품부 기자실로 향하면서 평소대로 스마트폰을 켜 외신기사를 읽고 있었다. 영국 국영방송 BBC와 프랑스 통신사인 AFP 등의 머리기사에 나온 ‘South Korea(한국)’ ‘Whaling(포경·捕鯨)’ 등의 단어가 눈길을 확 끌었다. 꼼꼼히 읽어 보니 파나마의 수도 파나마시티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포경위원회(IWC) 연례회의에서 한국 대표단이 과학조사용 고래잡이를 추진한다는 뜻을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황급히 농식품부 기자실에 도착해 인터넷을 검색했지만 AFP를 인용한 한 통신사의 기사를 제외하고는 이와 관련한 정부의 발표나 예정사항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농식품부 담당과를 찾아 이유를 캐물었더니 그제야 “IWC에 참석 중인 대표단이 과학포경 계획을 밝힌 건 사실”이라며 확인해줄 뿐이었다.

국민이 한국 정부의 중요 정책을 외신으로 처음 접해야 했던 것이다. 취재한 기사를 송고하고 난 뒤인 오후 5시 10분이 돼서야 농식품부는 기자실에 ‘국내 고래자원에 대한 과학조사 계획 발표’라는 제목의 3쪽짜리 보고서를 내놨다. 일부 언론은 뒤늦게 나온 자료 때문에 다음 날 아침신문에 관련 기사를 누락하기도 했다.

이런 촌극이 벌어진 것은 농식품부가 IWC 연례회의에서 과학적 포경을 요청할 것이라는 내용을 발표할 때까지 언론 등에 알려지길 꺼려해 쉬쉬하며 일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나중에 취재해 보니 농식품부는 이미 올해 4월부터 외교통상부 등 다른 부처와 범정부적인 협의를 거치며 ‘과학포경 계획’을 마련해 왔다. 농식품부 당국자는 “일부러 숨긴 것은 아니지만 불필요한 논란을 차단해 협상력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라고 해명했다.

포경은 세계적인 환경보호 움직임과 관련해 외교 문제로 불거질 수 있는 비중이 큰 사안이다. IWC 89개 회원국 가운데 절반 정도가 적극적으로 포경에 반대하는 반(反)포경국가다. 실제로 이날 오후부터 호주, 뉴질랜드, 미국 등 포경에 반대하는 나라들은 한국 정부를 비난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포경처럼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동의가 필요하고 외교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정책을 추진하면서 국내에서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치지 않았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이런 상황에서는 내년 5월 열릴 IWC 과학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다양한 갈등 관계가 얽혀 있는 정책을 추진하려면 투명성과 충분한 의견 수렴이 필수라는 사실을 정부 당국자들은 유념해야 한다.

유성열 경제부 기자 ryu@donga.com
#경제 카페#농식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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