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이 만난 사람/정성희] 김수현 희망서울정책자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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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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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행정은 이념의 문제 아닌 시민의 일상생활 다루는 것”

세종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수현 희망서울정책자문위원장의 책장 앞 공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노무현의 
사람’이 박원순 시정(市政)을 조언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강인한 인상에 제스처를 많이 쓰는 편이었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세종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수현 희망서울정책자문위원장의 책장 앞 공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이 놓여 있었다. ‘노무현의 사람’이 박원순 시정(市政)을 조언하는 역할을 맡은 것이다. 강인한 인상에 제스처를 많이 쓰는 편이었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책을 다듬고 조언하는 희망서울정책자문위원회의 위원장은 김수현 세종대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50)다. 유명 드라마 작가 김수현과 동명이인이어서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다. 18일 세종대 연구실에서 만난 김 위원장은 “변화를 바라는 것이 선거의 민심”이라면서도 “뒤집기식 변화, 한풀이식 정책은 안 하겠다”고 말했다. 어느 나라에서나 야당이 집권하면 직전 정부와 정반대로 가려다 정책이 꼬이는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많다.

―박 시장과 어떤 인연으로 정책자문위원장을 맡게 됐나.

“빈민운동가인 제정구 선생과 함께 한국도시연구소에서 일하던 1990년대 중반 당시 참여연대에 있던 박원순 변호사와 알게 됐다. 안다고 해서 친하다는 말은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친하다고 하면 밤새워 술도 마시고 어울려 다녀야 하는데 그는 일에 미친 사람, 현장에 미친 사람이다. 나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할 때 인수위원으로 새 정부 구성작업에 참여했고 환경부 차관 시절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에 보고를 했다. 빈민운동을 해본 현장 경험, 청와대 비서관으로서의 정책보좌 능력, 차관으로서 행정 경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것이다.”

그는 경북 선산군 구미읍(현 구미시) 출신으로 경북고를 거쳐 서울대 도시공학과를 나왔다. 1980년대는 대학생이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죄의식을 느끼던 시절이었다. 전공이 도시공학이다 보니 관심은 자연스럽게 도시 철거민, 세입자 문제에 기울었다. 서울시내 곳곳의 개발 과정에서 철거민들이 쫓겨 다니던 때였다. 그도 서울시내 판자촌에 안 다녀본 곳이 없었다. 신혼집도 판자촌에서 시작했다. 빈민운동을 하다 뒤늦게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도시계획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우리 젊을 때는 사회문제에 매달리느라 부모와 대립할 시간이 없어 부모와의 관계는 좋았는데 지금 청년들은 관심사가 내적 자아를 향하다 보니 부모와 갈등을 많이 겪는다”고 진단했다.

―자문위가 사실상 인수위이고 좌파 점령군이라는 불만이 서울시 직원들 사이에서 나온다. 인수위원에 서울시정과 관련이 없는 4대강 반대 인물까지 들어 있으며 너무 젊다는 비판도 있다.

“관행적으로는 시장이나 도지사도 인수위를 두지만 법적으론 대통령 말고는 인수위를 둘 수 없다. 그래도 새 시장이 공약 이행이나 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민심을 반영하기 위해 인수위 기능을 하는 기구가 필요하다. 보궐선거로 당선된 박 시장이 당선 다음 날 결재를 시작한 판에 새삼스럽게 인수위가 출범한다는 것은 이상하다. 그래서 자문위 명칭을 쓴 것이다. 좌편향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변화 욕구를 반영하기 위해 불가피하다고 말하고 싶다. 일부 자문위원들이 ‘잘못된 10년 시정(이명박 4년, 오세훈 6년)을 바로잡겠다’며 의욕을 보인다. 의욕 자체가 나쁘진 않다. 박 시장도 ‘머리 터지게 싸우라’고 주문했다. 치열한 논쟁을 통해 정제된 시정발전 계획을 내놓겠다.”

하지만 서울시 공무원들이 목소리 크고 행정 실무경험이 없는 좌파 인사들의 성화를 버티어낼지 걱정이다. 서울시 산하기관장에도 인수위원 가운데 일부 인사가 거론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 책임자가 자문위원장을 맡았다는 비판이 있다.

“당시는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세계적인 부동산 가격 상승기였고 외환위기 이후 가격 상승 압력이 누적돼 있었다. 세계적으로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한국이 가장 많이 오른 것은 아니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우리가 15위였다. 하지만 주거안전망이 취약하기 때문에 체감 고통이 컸다. 노 정부가 국민의 기대수준만큼 가격을 억제하지 못한 데 대해 무한책임을 느끼고 있다. 정치적 대가(대선 패배)도 치렀다. 하지만 총부채상환비율(DTI) 및 공공임대주택 도입으로 2006년 말부터 가격이 안정되면서 파국을 막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이후 공공임대주택 물량을 30% 수준으로 줄였지만 지금도 연간 8만 가구씩 입주가 이뤄지고 있다. 당시는 빛을 못 보았지만 지금 정책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전월세 상승으로 현 정부가 인기를 잃어가는 것을 보면 노 정부가 부동산 문제 때문에 큰 고통을 받았던 사실을 망각한 것 같다.”

―서울시장의 잔여 임기가 짧은데 너무 많은 걸 바꾸려 드는 것 아닌가.

“행정은 연속성이 중요하다. 세금이 누적적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서울시 예산이 20조 원이라고 하지만 시장이 조정할 수 있는 것은 5% 안팎, 1조 원 정도다. 이번에 박 시장이 바꿔 놓은 예산이 5000억∼6000억 원 규모다. 나는 이명박 정부가 초기에 너무 많은 것을 바꾸려고 한 것이 정권 말기에 부메랑이 됐다고 본다. 정책 변화의 수용범위가 있는데 범위를 넘어서 바꾸려 하다가 역풍을 맞고 뒤늦게 사회통합 공생발전 등 노 정부가 내세우던 가치로 돌아간 것이다.”

엄살인지는 모르겠지만 김 위원장은 “왜 변화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느냐”며 질타하는 진보 진영의 비판이 더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오세훈 전 시장의 핵심 사업인 한강르네상스 사업은 물 건너간 건가.

“그렇게 뭉뚱그려 말할 수 없다. 한강르네상스 사업은 한강에 5000t 크루즈선을 띄우는 아라뱃길 사업, 한강 접근성 제고 사업, 수변구역 친환경 사업 그리고 여의도 용산 등 한강 주변개발 사업 등 4개로 구분된다. 한강변에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생태를 회복시키는 사업은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여의도 반포 뚝섬지구의 한강 접근성 제고 사업은 과잉 치장된 느낌이 있지만 시민이 즐겁게 이용한다면 ‘노’ 할 이유가 없다. 한강 주변개발 사업은 이해당사자 간 분쟁이 있지만 분쟁만 해결되면 괜찮다. 문제는 아라뱃길 사업이다.”

―여의도에서 출발한 크루즈선이 중국 칭다오나 상하이를 오가면 관광과 물류 확대에 기여하고 일자리도 늘 수 있지 않나.

“큰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첫째 5000t급 크루즈선이 바다와 강물을 오가는 것이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겨울철 갈수기와 여름철 홍수기에 흐르는 유수량이 너무 차이가 나서 준설한다 해도 배가 다니기엔 부적합하다. 한국과 중국을 왕복하려면 바다와 강을 동시에 다닐 수 있는 크루즈선이 필요한데 바다를 다니는 배는 바닥이 뾰족해야 하고 강을 다니는 배는 바닥이 평평해야 한다. 세상에 이런 배가 어디 있겠나. 둘째 경제성이 없다. 강물에 떠다니는 5000t급 크루즈에는 카지노도 들어갈 수 없는데 중국 관광객들이 24시간 무얼 하며 바다를 건넌단 말인가. 경인운하와 한강은 수위 차이가 있어 독을 지나는 데만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이 문제는 감사원 감사에서도 충분히 지적됐다.”

느긋한 톤으로 대답하던 그가 이 사업에 대해서는 비판의 날을 세웠다. 오 전 시장이 청계천 효과를 누린 전임 이명박 시장을 의식하다 보니 전시성 과시성 사업에 집착해 판단을 그르쳤다는 얘기다. 김 위원장은 오 전 시장의 역점사업에 대한 비판을 이념논쟁으로 바라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도시계획 전문가로서 볼 때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오 전 시장의 디자인서울에도 잘못된 것이 많은가. “산업으로서의 디자인 부흥은 말릴 이유가 없다. 가로 디자인도 과잉 투자되긴 했지만 부정적으로 볼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울 상징물 사업은 문제가 있다. 광화문광장에서 수억 원짜리 스키점프 대회를 열고 해치 캐릭터를 만든다고 해서 서울의 경쟁력이 높아지진 않는다. 위압적인 느낌을 주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또 어떤가.”

김 위원장은 시민운동가 박원순이 시장이 된 것을 턴키(Turn Key·일괄수주계약) 방식에 비유했다. 지금까지는 설계, 즉 소셜 디자인(Social Design)을 하던 박원순이 이젠 시공까지 맡게 됐다는 얘기다. 턴키 시공은 효율성과 경제성이 높지만 방향을 잘못 잡으면 엉뚱하게 흘러가고 부실시공 우려도 있다. 그래서 턴키 방식에서는 감리가 중요하다. 자문위가 감리 역할을 자임하겠다는 것이다.

―오 전 시장의 정책 중에 계승할 만한 것은 없나.

“다산콜센터(120)와 시프트 정책은 정말 잘했다. 그러나 오 전 시장이 잘되는 정책을 돈을 써 홍보한 것은 잘못이다. 시프트 정책 홍보예산만 70억 원이더라. 좋은 정책은 홍보가 필요 없다. 시민이 다 알아준다. 도시를 공공디자인의 개념으로 이해한 것도 높이 평가한다.”

박 시장이 “머리가 벗어진다면 뉴타운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뉴타운 사업은 최대의 고민거리다. 박 시장 취임 이후 서울시청에 뉴타운 사업 반대주민들의 집회가 줄을 이었다. 은평지역과 상계지역 주민들이 사업에 반대하며 시청 로비에서 농성을 벌였다.

“뉴타운 사업은 오 전 시장의 책임이 아니다. 애당초 뉴타운이 너무 많이 지정된 것이 문제다. 당시 이명박 시장은 물론이고 노무현 정부, 그리고 표가 아쉬웠던 여야 정치인 모두의 책임이다. 2003, 2004년 뉴타운 지정 면적이 서울 면적의 약 9%였고, 시가지 면적으로는 15%나 됐다. 이 시장은 4년 만에 뉴타운 사업을 완료하겠다고 했지만 빈 땅에 건물을 올리는 데도 4년은 부족하다. 그 사이 경기가 악화하며 사업성이 떨어지고 사업에 달라붙었던 개발업자들의 거짓말이 들통 나면서 갈등이 심화했다. 현재 뉴타운 사업과 관련된 소송만 250건이 넘는다. 소송 결과를 봐가며 시장이 ‘수습’하는 모양새를 갖출 것이다.”

―사람냄새 나는 시정(市政)을 주창하면서 복지만 강화한다면 관광서울의 도시경쟁력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

“도시 전문가로서 나는 김현옥 서울시장(1960년대 서울 개발을 밀어붙인 ‘불도저 시장’)을 높이 평가한다.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당시 서울의 시대적 요구를 정확히 읽어냈다.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사업도 전근대적 도시개발의 마지막 작품이라 평가한다. 오 전 시장은 시대정신을 잘못 읽었다. 인구 유입이 정체된 저출산 고령시대, 저성장 시대, 양극화 시대의 시대적 요구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에 대한 투자다. 서울의 도시경쟁력이 고층빌딩과 휘황찬란한 디자인에서 나오겠는가. 서울에 풍부한 고급 인력을 활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김 위원장은 서울시 행정을 이념논쟁에서 놓아주기를 당부했다. 서울시 행정은 역사교과서지침을 바꾸는 문제도,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문제도 아니고 다만 시민의 일상, 생활세계를 다루는 문제라고 강조했다. 자신은 행정경험이 있는 실무자로서 시민 전문가그룹과 시장 간에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시장은 김두관 경남도지사, 송영길 인천시장과 회동을 하고 야권통합에도 일정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 행정을 이념과 현실정치로부터 풀어놓는 과제는 결국 박 시장 하기에 달렸다.

정성희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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