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북 카페]‘시타마치 로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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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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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자 출신 中企사장의 고뇌 “회사는 뭔가… 뭘 위해 일하나”

‘동일본의 오타(大田) 구, 서일본의 히가시오사카(東大阪).’

중소기업 강국 일본을 이야기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말이다. 각각 도쿄와 오사카의 외곽에 자리 잡은 중소제조업체 밀집지역을 뜻한다. 외형만으로는 보잘것없는 동네 공장들처럼 보이지만 높은 기술력을 기반으로 다양한 부품과 기계를 생산하고 있어 이 업체들이 한데 뭉치면 우주선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일본 제조업의 든든한 허리 구실을 해온 이 나라의 중소기업도 위태로운 환경 속에서 가까스로 버텨나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대기업 납품업체에는 영원한 약자일 수밖에 없고, 넉넉지 않은 자금 사정 탓에 은행에는 늘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중소기업의 처지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한국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쇼가쿠칸(小學館)이 지난해 11월 출간한 소설 ‘시타마치(下町) 로켓’(이케이도 준 지음)은 일본 중소기업이 처한 이 같은 현실을 잔잔하지만 리얼하게 그려내고 있다.

일본의 우주 연구 개발 기관에서 로켓 개발 프로젝트를 지휘하던 주인공 쓰쿠다 고헤이(佃航平)는 로켓 발사 실패 책임을 지고 연구자의 길을 포기한 뒤 아버지를 이어 오타 구에 있는 ‘쓰쿠다제작소’를 경영한다.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기술력을 가졌지만 돈이 안 되는, 이른바 수익모델을 찾지 못한 그저 그런 동네 공장이다.

근근이 버텨가던 쓰쿠다제작소는 대기업 납품업체의 일방적 거래 중단 통보에 매출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쟁기업으로부터 어느 날 갑자기 특허 침해 소송장이 날아들고, 없는 집에 제사 돌아오듯 꼬박꼬박 찾아오는 은행 대출 만기일이 숨통을 죄어 온다.

기업을 접느냐 마느냐 하는 기로에 선 쓰쿠다 사장은 대기업으로부터 로켓 관련 특허기술을 넘겨 달라는 달콤한 유혹을 받는다. “자회사가 돼주면 기술도 특허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부드러운 제안은 사실상 중소기업의 특허기술을 헐값에 사들이려는 대기업의 횡포인 셈이다.

위기에 처한 회사의 경영자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까. 종업원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경영자로서의 합리적 선택인가, 기술자 출신 경영자의 꿈과 자존심인가. “회사란 대체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하나.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나”라는 쓰쿠다 사장의 독백에서 일본 중소기업의 고민이 절절하게 와 닿는다.

시타마치 로켓은 지난해 말 출판된 이후 꾸준한 인기를 얻으면서 올해 상반기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나오키상을 받았다. 7월에는 TV 드라마로 각색돼 주목을 끌기도 했다. 일본 출판업계는 시타마치 로켓이 일본 사회 내에 묘한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동일본 대지진과 엔화가치 급등, 제조업체의 해외 이전 등으로 빈사상태에 처한 일본 제조업의 우울한 현실에 위기를 느끼면서도 장인정신의 꿈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쓰쿠다제작소에서 희망을 보고 싶어 한다는 평가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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