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 윈도]요리하는 남자들

  • 입력 2009년 10월 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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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남자가 “난 집에서 청소와 빨래는 안 합니다”라고 말할 때, 대부분의 여자들 머릿속에선 ‘이 남자, 꽤 가부장적이네’란 생각이 본능적으로 스칩니다. 그런데 반전이 있습니다. “아, 제가 집에서 요리는 합니다. 한식부터 이탈리아 음식까지…. 아이들이 제가 만드는 음식을 좋아해요.” 요리하는 남자는 매력적입니다. 다른 집안일은 나 몰라라 해도, 그 음식의 맛이 좀 떨어진다 해도 ‘뭐 어때’!

40대 초반의 직장인 김모 씨는 몇 달째 서울시내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한식을 배우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익힌 LA갈비 등의 요리를 주말에 집에서 하며 솜씨를 발휘한다고 하네요. 아내와 초등학생 두 아들은 그의 요리하는 모습을 마치 퍼포먼스 구경하듯 즐겁게 지켜본답니다. 그는 왜 요리를 배울까요.

“30대 때는 정신없이 사느라 아이들이 어떻게 컸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아이들은 그저 엄마의 ‘손맛’에만 익숙해 있었죠.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리고 아이들과 소통할 방법을 찾다 보니 요리를 떠올리게 됐어요.”

삶이 고단했던 중국계 여성들이 미국에서 새 인생을 개척하며 음식을 장만하는 모임을 만들었던 ‘조이 럭 클럽’, 음식을 만들어 사랑의 감정을 전달하던 ‘달콤쌉사름한 초콜릿’ 등 외국 영화들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요리는 화합과 소통, 사랑의 행위입니다. 한국 남자들이 요리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다고나 할까요.

국내 식품 및 유통업계는 이런 트렌드를 재빨리 간파했습니다. 이마트 식품 판매대에는 지난달 중순부터 ‘아빠랑 담그는 맛있는 김치’란 신상품이 올랐습니다. 1.4kg짜리 배추와 김치 양념이 들어 있어 김치 반 포기를 담글 수 있는 제품(6550원)입니다. 본격적인 김장철이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보름 동안 300개가 팔렸는데, 주로 젊은 아빠들이 사 갔다는 설명입니다.

지난달부터 시작한 롯데백화점 본점 문화센터 가을학기의 21개 요리강좌 수강생 중 남성 수강생의 비중은 22%나 됩니다. 이 백화점의 7∼9월 수입산 양념소스의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8% 늘었는데, 남성 고객들이 매출 상승을 주도한다고 하네요.

‘요리하는 남자’의 이면엔 한국 사회의 ‘준 솔로족’ 트렌드도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가정을 꾸렸지만 각기 미혼 시절 취향을 유지하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따로 만들어 먹는 거죠. 남자는 보쌈과 막걸리, 여자는 맥주와 라면…. 어쨌거나 앞치마를 두른 남자는 가족을 행복하게 합니다. 올가을, 요리의 세계에 빠져 보세요!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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