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곤소곤경제]보험은 왜 생겼나요

  • 입력 2008년 9월 24일 03시 06분


사고당한 사람 혼자서 감당하기 너무 힘들어

여러 사람이 평소 조금씩 모은 돈으로 도와줘

보험료는 안심하고 생활하게 해준 대가인 셈

●사례: 지역사회에서 사회체육을 담당하고 있는 최모(39) 선생님. 매사에 긍정적이고 청소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청소년들뿐 아니라 동료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다.

특히 최 선생님이 겨울방학을 이용하여 청소년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스노보드 즐기기’라는 프로그램은 참가 접수를 시작하면 모집 인원이 바로 차버릴 정도로 인기 만점이다.

최 선생님은 올해에도 이 계획을 추진하다가 문득 지난해에 있었던 사고를 떠올렸다. 스노보드를 타던 한 청소년의 다리가 골절됐던 것이다. 부상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100만 원이나 했던 치료비 부담 문제로 한동안 골치가 아팠다.

그렇다고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스노보드 강습을 올해 중단할 수는 없었다.

“스노보드도 마음껏 즐기고 만만치 않은 부상 치료비도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을 거듭하던 최 선생님의 머리에 불쑥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최 선생님은 스노보드 즐기기 프로그램에 참가 신청을 한 100명의 청소년 가정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보냈다.

“스노보드를 배우는 사람 100명 가운데 한 명꼴로 부상을 당하며, 치료비가 100만 원 정도 듭니다. 이번 캠프에 참가할 우리 청소년들 가운데에서도 누가 부상을 당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에 대비해서 참가자 1인당 1만 원씩의 돈을 갹출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돈을 모은 후 부상을 당한 청소년이 생기면 치료비로 쓰겠습니다.”

최 선생님의 아이디어에 대한 반응이 매우 좋아서 편지를 받은 학부모들은 모두 기꺼이 1만 원씩 냈다. 자기 자식이 다치지 않으면 1만 원은 사라져버리지만 그래도 부상하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그 무사함에 비하면 1만 원 정도의 돈은 없는 셈 칠 수 있을 만큼 부담이 작다. 더욱이 이 돈이 부상한 청소년의 치료비로 쓰이니 허튼 데에 낭비한 것도 아니다.

반면에 부상한 청소년은 치료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좋다. 1만 원만 냈는데도 돌려받는 혜택은 100만 원이나 된다.

최 선생님과 참가자들은 치료비 걱정을 떨쳐버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스노보드를 타러 스키장으로 향할 수 있었다.

●이해: 사람들은 대개 사고나 위험을 싫어한다. 그러나 싫어한다고 해서 위험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므로 어쩔 수 없이 위험을 걱정하며 살고 있다.

운전하다 교통사고가 날 위험, 집에 화재가 날 위험, 암에 걸릴 위험, 운동하다 다칠 위험, 심지어는 벼락에 맞을 위험까지 위험의 종류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위험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끝에 사람들이 만든 제도가 보험이다.

위험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이 있고, 위험이 닥칠 경우 상당한 비용이 들며, 누구에게 그 위험이 닥칠지 미리 알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보험이 성립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된 셈이다.

많은 사람이 평소에 조그마한 금액의 돈을 낸다. 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무시해도 좋을 만큼의 적은 돈이다. 없더라도 생활하는 데 큰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 적지만 많은 사람이 모으면 큰돈이 된다. 그러다 위험이 실제로 닥쳐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생기면 이 돈으로 그 사람을 도와준다. 이게 보험의 작동 원리다.

한국에서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관혼상제의 축의금도 보험의 원리와 다를 바 없다. 돈을 조금씩 모아서 큰일을 치러야 하는 사람을 도와줬던 정신을 실천하는 상부상조의 제도다.

사고를 당한 사람은 혼자서 감당하긴 어려운 금액을 보험회사로부터 보상 받을 수 있으므로 보험에 가입하길 잘했다며 매우 만족스러워한다.

사고를 당하지 않은 사람 가운데에는 계약 기간이 끝났을 때 자신이 낸 돈을 돌려달라고 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하지만 이는 보험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그 사람이 낸 돈은 사고를 당한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이미 사용됐기 때문이다.

중도에 계약을 해약하는 경우 그동안 낸 보험료를 돌려받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보험에 가입한 후 아무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자신이 낸 보험료를 돌려받지 못한다. 보험 가입 기간에 “만약 내가 사고를 당하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을 떨쳐버리고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한 대가가 보험료라고 생각해야 한다.

또 실제로 자신에게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그것이 더 큰 축복이다.

한진수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경제학 박사

정리=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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