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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쉬는 조선왕릉]<8>정자각 건축에 숨은 원리

입력 2008-09-24 03:00업데이트 2009-09-24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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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릉 입구 홍살문에서 바라본 정자각. 영조 원비 정성왕후의 능 홍릉(경기 고양시)이다. 입구를 바라보고 있으니 당연히 건축물의 정면이어야 하지만 시야에 들어온 모습은 측면이다. 고양=윤완준 기자
“신성한 봉분, 홍살문서 보이지 않게”

정면 입구를 오른쪽 90도 방향 배치

왕릉의 정면은 어디일까.

조선 영조 원비 정성왕후의 홍릉(경기 고양시)에 들어서는 순간, 잠시 헷갈린다. 조선 왕릉 입구인 홍살문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丁’자 형태의 건축물인 정자각(丁字閣). 정자각의 방향이 입구를 향해 있으니 정면이 분명한데, 눈에 들어오는 건축물의 모습은 전형적인 측면이기 때문이다. 건축물 정면에 응당 있어야 할 계단도 보이지 않는다. 마치 측면이 정면 행세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실제로 정자각은 조선 왕릉 어디서나 신주를 모신 ‘一’자 형의 정전(正殿) 앞에 붙은 ‘궐’ 자 모양의 절하는 공간 배전(拜殿)의 맞배지붕(지붕의 앞면과 뒷면이 맞닿아 있는 지붕 양식) 옆면이 정면처럼 앞을 보고 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참도(參道)의 방향은 정자각 앞에서 오른쪽으로 90도 꺾였다가 정자각을 따라 왼쪽으로 다시 90도 꺾인다. 건축물 오른쪽에 이르러서야 정자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그렇다. 홍살문에서 정자각의 ‘측면’이라고 생각한 면이 실제로는 ‘정면’인 셈. 정자각은 ‘시각적 정면’과 ‘행위적 정면’이 다른 건축물이다.

정자각은 참배자가 동쪽(오른쪽)으로 들어가 서쪽(왼쪽)으로 나오도록 설계됐다. 이는 참배자가 정자각 뒤 봉분을 정면으로 보지 못하도록 해 왕릉의 위엄과 권위를 배가하는 효과를 낸다. 또 해가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지듯 동쪽은 시작과 탄생, 즉 양(陽)을 뜻하고 서쪽은 끝과 죽음, 음(陰)을 뜻한다. 자연의 섭리를 인공적 건축물에 구현한 것이다.

‘행위적 정면’에는 두 개의 계단이 있다. 하나는 수려한 구름무늬를 새긴 소맷돌(난간)과 삼태극 무늬의 고석(鼓石·북 모양의 둥근 돌)을 꾸민 화려한 계단이다. 다른 하나는 소박한 계단만 갖췄다.

여기에도 신성한 세계와 세속 세계를 구분하는 원리가 숨어 있다. 화려한 계단은 선대 임금의 영혼이 땅을 떠나 구름을 밟고 하늘로 올라가는 상징이다. 왕릉 입구 홍살문의 삼태극과 상통하는 고석의 삼태극은 참도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기호이기도 하다. 그 옆 간소한 계단은 임금이 이용한다.

복잡한 원리는 끝이 없다. 동쪽의 올라가는 계단이 2개인 반면 서쪽의 내려오는 계단은 하나밖에 없다. 누군가는 올라갈 수만 있고 내려올 수 없다는 뜻. 서쪽 계단은 임금이 제향을 마치고 내려오는 계단이다.

내려오지 못하는 선대왕의 영혼은 어디로 갈까? 같은 제향 공간이지만 조선 왕의 신위를 모신 종묘 정전과 정자각의 결정적인 차이가 여기에 있다. 종묘 정전의 뒤에는 문이 없다. 신위에 혼백이 담겼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자각 뒤에는 문이 나 있다. 동쪽 계단으로 올라온 왕의 영혼이 이 문을 통해 봉분으로 홀연히 올라간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문은 정자각에서 봉분 앞까지 펼쳐진 언덕인 푸른 사초지(莎草地)와 그 위 봉분 및 문·무석인, 장명등 같은 조각을 어렴풋이 보여주면서 정전의 어두운 공간 뒤로 펼쳐진 또 하나의 신비로운 경관을 창조한다. 태조 능인 건원릉(경기 구리시), 인조 능인 장릉(경기 파주시), 중종 제2계비 문정왕후 능인 태릉(서울 노원구 공릉동) 등의 풍경이 일품이다.

또 정자각 기둥은 주춧돌에서 70cm 높이까지는 하얀색으로 칠해져 멀리서 보면 마치 기둥이 공중에 떠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구름 위 천계의 세계를 형이상학적으로 표현한 것”(이영 경원대 건축학과 교수)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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