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로저 코언]찢긴 미국 통합하는 오바마 파워

  • 입력 2008년 3월 14일 03시 00분


요즘 케냐에서는 ‘루오 족 출신 대통령이 나온다면 케냐보다 미국이 더 쉬울 것’이라는 농담이 유행하고 있다.

루오 족 출신인 케냐 야당 지도자 라일라 오딩가 씨는 “우리가 (선거에서) 승리했는데도 나는 취임 선서를 하지 못했다”며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대통령이 되면 그는 사상 두 번째 (루오 족) 대통령이 될 것이다. (첫 번째인) 나는 투표함을 도둑맞았다”고 말했다.

오바마 의원은 아버지의 나라인 케냐가 부족 간 분쟁으로 몸살을 앓던 시기에 태어났다. 케냐는 지난해 12월 27일 대통령 선거를 치른 뒤 최근까지도 1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50만여 명이 고향에서 추방되는 심각한 소요사태를 겪었다.

루오 족은 오바마 의원의 부계 가족이 자신들과 같은 부족이라며 조건 없는 애정을 나타낸다. 반면, 케냐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부족인 키쿠유 족들은 그에 대해 냉담하다.

케냐가 1963년 독립한 이래 루오 족 출신 대통령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현직 대통령인 므와이 키바키도 초대 대통령인 조모 케냐타 전 대통령처럼 자기 부족만 편애하다 고소를 당한 키쿠유 족이다. 무려 45년 동안이나 이어진 케냐 폭력 분쟁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 1960년대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한 오바마 의원의 아버지는 “부족주의가 나라를 망하게 할 것이다”고 경고한 바 있다.

오딩가 씨의 아버지도 루오 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모를 당했다. 그는 루오 족 지역인 키수무에서 부족 간 분쟁이 발생한 뒤 1969년 투옥됐다. 이 지역은 최근에도 건물이 불타고 상점들이 파괴되는 재앙을 겪었다.

상황이 이런데 오늘날 인류는 부족 중심주의를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주요 강대국들에선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종교 민족 언어 인종의 정체성을 강조하는 각 부족의 갈등도 공존한다. 인터넷이 세계 각국과 시민들의 마음을 개방시켰지만 편견을 부추기는 의견을 양산하기도 한다.

성전주의(Jihadism)는 아마도 가장 폭력적인 형태의 부족 갈등일 것이다. 그러나 근본주의가 이슬람만의 문제는 아니다. 기독교, 유대교, 힌두교 등 다른 종교에도 극단적 경향은 존재한다.

미국의 평화로운 ‘부족’들도 예외는 아니다. 민주당 경선에서 맞붙은 오바마 의원과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지지층은 흑인, 히스패닉, 50세 이상의 여성, 볼보 승용차를 운전하는 자유주의적 지식층, 연고주의 지지자, 30세 미만 유권자 등 수많은 ‘부족’으로 나누어진다.

미국은 이처럼 국내외적으로 분열 과정에 놓여 있다. 전쟁이나 소득 격차, 정치적 양극화, 문화 전쟁 등 원인도 다양하다. 이 같은 분열에 대한 치유가 차기 미국 대통령의 가장 큰 과제일 것이다.

오바마 의원은 수 년 동안 ‘통합의 가능성’을 자신의 핵심 정책으로 강조해 왔다. 힐러리 의원의 지지자들은 ‘시 구절 같은 말에 지나지 않는다’며 이를 비웃고 있지만 나는 새로운 행정 제안과 공정한 세금 정책, 건강보험, 국제사회와의 대화를 다룬 오바마 의원의 글을 많이 읽었다. 그의 특이한 경험과 인종, 종교, 계층 등을 주제로 쓴 글도 보아왔다. 그의 용기는 출신만 떠올려 봐도 분명히 드러난다.

케냐의 부족 분쟁에서 중재자 역할을 맡았던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다면 세계는 믿기 어려운 발전을 이루게 될 것이다.”

―나이로비에서

로저 코언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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