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 일상을 만날 때]우린 지금 어디쯤 서 있을까

  • 입력 2007년 11월 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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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무릎 위에 놓인 두툼한 지도는 종이가 죄다 들뜨고 귀퉁이 역시 심하게 닳아 있었다. (…)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는 게 차라리 이상했다. 지도 중독도 있군. 나는 생각했다.’

은희경 씨의 단편 ‘지도 중독’(소설집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 중에서)에서 P 선배는 로키산맥 자동차여행 내내 말없이 지도만 들여다본다. 화자 M이 ‘지도중독자’라고 여길 정도로, 손에 쥔 지도가 ‘이상 성격의 주인에게 들볶인 애완물처럼’ 보일 정도로 P 선배는 오로지 지도에만 몰입한다. 브리태니커 세계지도를 종종 들여다본다는 소설가 김중혁 씨의 얘기는 P의 지도 중독을 헤아리게 한다. “내가 어디 있는지 잘 모르니까, 내 주위에 뭐가 있고 어떤 세계 속에서 내가 살고 있는지 모르니까, 그럴 때 지도를 펼쳐 본다”고. ‘불우한 천재’ 소리를 들으면서 사회에서 튕겨져 나온 P는 자신이 어느 좌표 위에 서 있는지 알아내는 게 절박했을 터이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지도는 매혹적이다. 목적지를 정해 놓고도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모르는 게 다반사고, 맞는 길이라고 확신했다가도 샛길로 빠지기 십상인 게 인생인데, 목적지로 가는 길을 한눈에 보여 주는 지도란 얼마나 근사한지! 게다가 그 길이 잘해야 한 뼘 정도라면. 이만큼 짧으리라는 상상만으로 더욱이나!

김중혁 씨의 단편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소설집 ‘펭귄뉴스’ 중에서)의 화자도 그랬다. 지도와 실제 지형 간의 오차를 찾아내는 연구소 직원인 그는 어머니를 잃은 뒤 그때껏 걸어온 인생의 지도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느낌이다. 그런 그가 캐나다의 삼촌에게서 받은 에스키모의 나무 지도는 방위와 축척과 기호로 만들어진 지도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에스키모들은 해변의 지도를 그리기 위해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해변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들은 지도를 그리기 위해 자신의 기억을 모두 동원합니다.” 인생의 지도는, 정확하게 측정해서 제작된 종이 위의 지도보다는 소리와 기억을 바탕으로 나무를 깎아 만든 에스키모의 지도와 좀 더 닮아 있을 것이다.

철학적인 사유가 아니더라도 지도는 좀 더 개인적으로, 한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담아 주기도 한다. 가령 김연수 씨의 단편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농담’(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중에서)에서 화자가 지도를 들고 헤어진 아내와 함께 걸었던 길을 다시 걷듯, 지도 위의 지명 곳곳에는 그곳에 발을 두었던 사람의 추억 또한 담겨 있다.

지도의 작은 점 위에 손가락을 얹어 그때의 기억을 돌아볼 수도 있고, 혹은 소설가 윤성희 씨의 부드러운 에세이 ‘나는 소설을 읽듯 지도책을 읽는다’(2001년 문예중앙 겨울호)에서처럼 가 보지 않은 곳을 상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윤 씨처럼 지도를 펼쳐 놓고 “내가 사는 C시에서 국도 47호선을 타고 길을 가다가 용인에서 국도 45호선으로 갈아타고, 평택에서 국도 35호선을 갈아타는” 상상여행. 어쩌면 머지않은 날에 이루어질 수도 있는 여행.

문학과 지도는 모두 삼차원의 현실을 이차원의 종이에 옮겨 놓은 것이다. 지도를, 또는 소설을 펼쳐 놓고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돌아보는 일, 한번 해 보면 어떨지.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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