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크엔드 포커스]80년대 전자제품 명소, 철거 앞둔 세운상가

  • 입력 2007년 6월 15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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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운상가 키드, 종로3가와 청계천의 아황산가스가 팔할의 나를 키웠다.” 시인 유하는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3’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1970, 80년대에 서울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은 유하처럼 세운상가와 관련된 추억 한두 개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세운상가는 용산전자상가와 테크노마트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국내 최대이자 사실상 유일한 전자제품 도소매상가였다.》

최근 서울시가 세운상가 일대를 녹지지대로 조성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세운상가의 수명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세운상가의 종말이 새삼 아쉬운 것은 흘러간 시대의 추억 외에도 수십 년간 한곳에서 전자제품만을 다뤄 온 장인(匠人)의 숨결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철거 계획 발표 후 손님 발길 줄어

세운상가 상인들은 2015년까지 상가 일대를 녹지지대로 바꾸겠다는 서울시의 계획에 대해 반신반의하는 상태다. 철거 및 개발 계획은 오래전부터 나온 내용일 뿐 아니라 철거와 관련해 서울시와 상인들 간의 협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 상인은 “전자제품의 특성상 한번 구입하면 10년 이상 쓰는 경우가 많은데 곧 문을 닫을 거라는 소리가 나오니 사람들이 오겠느냐”며 “지방의 단골손님들도 폐쇄 시기를 묻는 전화를 자주 한다”고 말했다.

세운상가의 판매 품목은 용산이나 테크노마트와 크게 다를 게 없지만 소년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는 찾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세운상가시장협의회 정광길 회장은 “세운상가는 점포 임대료가 다른 전자단지에 비해 저렴하기 때문에 가전제품의 가격이 10∼15% 싼 편”이라며 “청계천과 부근 재래시장의 볼거리를 고려하면 세운상가의 경쟁력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일부 상인은 세운상가를 무조건 허물기보다는 리모델링을 통해 일본 도쿄의 전자제품 상가인 아키하바라처럼 유지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세운상가를 지키는 장인들

세운상가에 입점한 430여 개의 점포 중에는 40년 넘게 전자제품만 수리한 장인도 적지 않다.

세운상가 건설 이전의 광도백화점 시절부터 전자제품을 수리한 뉴스타전자 김운민(73) 사장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는 오디오, 텔레비전, 비디오 등을 거쳐 최근에는 휴대전화와 무선장비, 감시카메라에 이르기까지 전자제품의 발전에 맞춰 거의 모든 분야의 전자기기를 수리했다. 10여 년간 세운상가시장협의회의 회장을 지낸 그는 세운상가의 숨은 기술자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과거에는 대기업보다 우리 기술력이 훨씬 뛰어났어요. 40일의 시간만 주면 IBM사의 컴퓨터를 그대로 만들어 내거나, 3000만 원이면 1인용 헬리콥터를 거뜬히 만들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오디오 마니아들이 즐겨 찾는 솔로몬전자는 고가의 오디오 제품을 고친다. 오래전 출시된 제품의 부품도 대부분 갖고 있어 수리가 가능하다.

일제 코끼리밥솥을 30여 년 동안 수리해 온 해성전기, 세운상가가 문을 연 이래로 40여 년 동안 한곳에서 카메라만을 판매해 온 세운카메라도 명물 점포다. 정오전자는 방송용을 포함한 영상 카메라만을 전문적으로 수리한다.

세운상가 일대에선 여전히 성인용 책과 비디오, 불법 발기부전제 등 각종 의약품이 거래되고 있다. 하지만 인터넷의 영향으로 성인용품은 사실상 거래가 끊겼다고 한다.

이 밖에 세운상가를 찾는 지방 상인들이 반드시 들른다는 인근 함흥냉면 식당도 가볼 만한 곳으로 꼽힌다.

○최초, 최초, 최초…

세운상가는 1966년에 부임한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의 지시로 건축가 김수근이 종로∼퇴계로를 공중 보도로 잇는 주상복합건물 설계안을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세계의 기운이 모인다는 뜻의 ‘세운(世運)상가’는 8∼17층짜리 건물 여덟 개가 모여 1968년에 최초의 도심재개발 사업의 하나로 완공됐다.

세운상가는 국내 최초의 고층 아파트 단지이기도 했다.

주거용 건물로 지어진 고층 아파트인 현대세운(1967년, 13층) 신성상가(1967년, 10층) 청계상가(1967년, 8층)는 모두 세운상가로 불렸다. 건물 밑층에는 상가가 밀집했으며 상부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최초의 슈퍼마켓’도 생겨났다. 슈퍼마켓이라는 개념이 없던 1968년 세운상가 내 삼풍상가에 ‘삼풍슈퍼마켓’이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일반 생필품은 재래시장이 장악했기 때문에 지하 400여 평의 삼풍슈퍼마켓에서는 그릇과 주방용품 위주로 판매가 이뤄졌다.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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