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힘이 곧 法이다? 수컷들의 게임법칙…영화 ‘야수’

  • 입력 2006년 1월 5일 03시 05분


코멘트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사진 제공 올댓시네마
‘야성’은 ‘억누름’과 공존한다. 들판을 마음껏 달리는 늑대는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며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다. 하지만 철창에 가둬 보자. 철창 사이에 피와 살점이 매달릴 때까지 미친 듯이 철창을 들이받을 것이다. 비로소, 구속되었을 때, 야수의 본성은 확인된다.

영화 ‘야수’(김성수 감독·팝콘필름 제작)는 제목 그대로 이 ‘야수’를 보는 느낌이다. 불 같은 형사와 얼음 같은 검사, 두 사나이가 사회악과 싸우면서 거친 야수로 변해가는 과정을 강렬한 액션과 감각적 영상으로 하드보일드하게 담아냈다.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강력반 형사 장도영(권상우)과 완벽주의 엘리트 검사 오진우(유지태).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은 조직폭력배 구룡파 보스 유강진(손병호)을 잡기 위해 뭉친다. 법과 정의를 능가하는 ‘힘’을 가진 유강진은 수사망을 피하며 오히려 두 사람을 위협한다. 결국 외압과 누명으로 수사는 종료되고 도영과 진우 둘 다 감옥에 가게 된다. 정의가 불의에 무너지게 되자 이들은 정의를 버리고 ‘이기자’는 신념만 남은 야수로 변해간다. 그들 역시 폭력으로 유강진을 파멸시키려 하는 것.

영화 ‘야수’에서 야성이 느껴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억누름에 대한 반작용’이다. ‘유강진’으로 대변되는 사회 이면의 추악한 힘은 수업시간에 ‘정의는 승리한다’고 배운 사람들의 도덕 감정을 옭아맨다. 당혹스럽다. 이런 당혹감은 악을 응징하려는 주인공들의 처절한 몸부림에 누그러진다. 하지만 일반 영화처럼 정의가 화려하게 승리하는 결말은 없기 때문에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없다.

영화에는 ‘주인공들의 야성’만이 존재한다. 동생의 복수에 미친 ‘무대뽀’ 강력반 형사(지적인 강력반 형사는 없을까?), 전형적인 냉혈 검사(검사는 꼭 안경에, 2 대 8가르마를 탈까?), 악의 축인 듯한 조직폭력배 두목. 지독히 전형적인 설정이다. 전형성을 무너뜨리는 것은 오직 스타 배우들의 힘뿐.

헝클어진 머리, 그을린 얼굴빛, 창백한 입술로 거친 욕을 내뱉는 권상우의 연기가 돋보인다. 평소 지적되던 발음 문제는 오히려 장점으로 부각된다. 뇌를 빼고 다니는 듯 무식한 느낌이 말투에서 충분히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가 맡은 장도영의 초지일관 유지되는 무식 캐릭터는 영화 ‘야수’를 야수답게 하는 제1 요인이다.

18 대 1로 싸워도 승리하는 황당한 결말의 뻔한 영화 액션과 달리 한 마리의 개처럼 얻어터지고 깨지며 만들어 내는 액션도 인상적이다. 유지태도 풍부한 음성과 세밀한 표정 연기로 승패에만 집착하게 되는 오진우 역을 깔끔히 소화해 냈다. 실제 조폭 출신의 한 인물을 스크린에 옮겼다는 유강진 역의 손병호도 평범함 속에 사악함을 감춘 이중성을 잘 표현했다.

하지만 스타일리시한 캐릭터만 돋보일 뿐 이야기는 죽었다는 아쉬움을 남긴다. 장도영이 왜 “단 하루라도 행복 하고 싶다”고 말하는지, 오진우가 왜 정의에 그토록 집착하는지, 답이 없다. 12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