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뷰]‘맨츄리안 켄디데이트’ 음모에 빠진 미국

  • 입력 2005년 3월 2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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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U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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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와 이라크전쟁이 미국인들에게 남긴 심리적 내상(內傷)은 깊다. ‘양들의 침묵’의 조너선 드미 감독이, 1962년 제작됐던 동명 영화를 2004년 리메이크한 ‘맨츄리안 켄디데이트’는 그 내상이 미국인들에게 어떤 피해망상을 갖게 했는가를 보여준다.

걸프전 참전용사인 마르코 소령(덴절 워싱턴)은 전쟁이 끝난 뒤 12년이 지나도록 기묘한 꿈에 시달리며 정신과 치료를 받는다. 실세 상원의원인 엘리노 쇼(메릴 스트리프)의 아들이자 자신의 부대원이었던 레이먼드(리브 슈라이버)가 전투상황에서 동료 부대원들을 살해하는 꿈을 꾸는 것. 실제로는 레이먼드가 매복한 적의 공격에 맞서 대원들을 구해 무공훈장을 받았다.

꿈과 현실 사이에 모종의 틈이 있다고 의심하는 마르코 소령은 옛 부대원들이 자신과 같은 악몽에 시달리다가 하나씩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유일하게 행복한 사람은 전역 후 ‘참전영웅’ 경력과 어머니 쇼 의원의 집요한 정치술수 덕에 승승장구 백악관을 향해 나아가는 하원의원 레이먼드. 그러나 어렵사리 레이먼드를 만난 마르코 소령은 그 역시 자신과 같은 꿈에 고통 받는다는 고백을 듣는데….

드미 감독이 40년 전에나 신선했을지 모를 낡은 소재를 다시 영화화하기로 한 의도는 스릴러적 얼개보다는 영화 속 다른 대목에서 읽힌다. 권력을 잡기 위해 세계 분쟁 위기를 확대해서 국민들에게 알리고 미군의 해외파병을 정당화하려는 정치술수들, 정치자금을 마련하려고 독재자와 인종학살 전범 등이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과 손잡는 워싱턴의 추악한 정치인들….

드미 감독 혹은 그와 비슷한 생각을 갖는 미국인들은 ‘세계평화와 정의의 수호자’인 미국이 하루아침에 무차별 테러의 표적이 된 것은 바로 미국 권력 핵심부에 이런 사악한 세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정신적 혼란이 크다 해도 드미 같은 감독이 워싱턴, 스트리프라는 호화 출연진으로 이토록 엉성한 음모론 류의 영화를 만든 것은 변명이 안 된다. 1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 가. 원제 The Manchurian Candidate.

정은령 기자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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