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학산고 빵…맛도 희망도 ‘빵빵’합니다

  • 입력 2004년 12월 2일 16시 10분


코멘트
직접 만든 빵과 케이크를 들고 포즈를 취한 학생들. 이들이 만든 빵에는 학생다운 순수함이 묻어나온다(왼쪽 첫 번째는 심신섭 공장장, 오른쪽에서 세 번째는 판매책임자 정효선 씨). -정읍=강병기 기자
직접 만든 빵과 케이크를 들고 포즈를 취한 학생들. 이들이 만든 빵에는 학생다운 순수함이 묻어나온다(왼쪽 첫 번째는 심신섭 공장장, 오른쪽에서 세 번째는 판매책임자 정효선 씨). -정읍=강병기 기자
“야! 빵 사줘!”

아이들은 꼭 이렇게 외친다. 그 앞을 지나갈 때면.

머리 위 높이에 유달리 큰 글씨로 써 있는 간판. 글자는 딱 하나 ‘빵’.

전북 정읍시 상동 학산정보산업고등학교 내 학산제과점.

보기에는 평범한 제과점이지만 전국에서 단 하나뿐인 고등학교 내 빵집이다.

학생들이 직접 만들고 판매하는 제과점.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사회에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뒤집어지는 세상. 이곳에서는 학교에서 배운 모든 것을 그대로 ‘살아 있는’ 재료로 활용해 빵을 만들어낸다.

○ 학교 안의 회사

학산제과점은 이 학교 내에 설립된 학교기업. 학교기업이란 실업고 학생들의 실습과 취업을 위해 학교가 직접 설립한 회사로 교육인적자원부가 올해 처음으로 전국의 실업고 5곳을 선정했다. 전국의 실업고가 700여개니 단순 경쟁률만 140 대 1.

이중 4곳은 모두 공업계 고등학교로 기계, 금속제조 등의 분야이며 제과점은 학산고가 유일하다.

학산제과점은 이 학교 제과제빵과와 호텔 조리과 졸업반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실습 기회를 주기 위해 만들어졌다. 나머지 헤어미용과, 보건간호과, 인터넷정보통신과와 인터넷 정보경영과 학생들을 위한 기업은 현재 계획 중이다.

이호춘 교장(63)은 “큰 기업의 제조과정은 대부분 기계화돼 있기 때문에 실습생들은 구경만 하다 오게 되고 작은 제과점으로 가면 아르바이트생 정도의 잡일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빵 만들기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을 경험할 수 있는 교내 제과점이야말로 교육과 창업에 적격인 실습장”이라고 말했다.

학교 내 빵집이라고 우습게 보면 곤란하다. 비록 학교 건물 내 입주해 있고 인테리어도 어설프지만 빵맛만은 서울 유명 베이커리에 뒤지지 않을 정도.

제대로 된 교육과 운영을 위해 상당액의 비용을 들여 전문가를 스카우트해 오기도 했다.

공장장인 심신섭 씨(39)는 전북에서 유명한 ‘풍년제과’에서 20여년간 일한 베테랑. 판매를 책임지는 정효선씨(29·여)도 수년간 제과점에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

여기서 일하는 학생들은 30만∼40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내년 2월 졸업 때까지는 일하면서 취업을 준비할 수 있다. 빵 만들기와 판매에 관련한 모든 과정을 실제로 익히기 때문에 취업 직후 바로 현장에 투입할 수 있다는 것이 이 학교 기업의 장점. 이미 9명 중 2명이 취업하고 현재는 7명이 일하고 있다.

○ 달려라 학산고 빵!

아무리 취지와 이상이 높아도 결국 빵집은 빵맛으로 평가받는 법. 맛이 없다면 학생이 아니라 학생 할아버지가 해도 성공하기 힘들다.

올 10월 29일 개업한 학산제과점의 빵은 학생들뿐 만 아니라 인근 주민에게도 단골메뉴가 됐다. 설립 전 하루 30만원의 매출을 계획했지만 문을 열고 나니 하루 평균 50만∼70만원어치씩 팔리고 있다. 요즘엔 지역 단체를 비롯해 멀리 전주에서까지도 주문이 이어지고 있다.

이달 초 동 체육회 행사를 위해 단팥빵 등 빵 1000여개를 주문한 정읍시 수성동사무소측은 “하도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이 많다 보니 믿고 먹을 수 있는 빵을 찾게 됐다”며 “맛도 훌륭하지만 학생들이 정성스레 만든다는 점에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여기서 만드는 빵은 쿠키, 빵, 케이크 등 70∼80여 가지. 단팥빵, 소보로빵 등에서부터 머핀, 마들렌, 크로켓, 케이크 등 시중 제과점에서 볼 수 있는 빵은 거의 다 있다.

단 식빵은 없다. 주 고객층인 여학생들이 식빵을 잘 안 먹기 때문. 대신 바게트빵을 만든다. 주 고객층의 기호를 판단해 종류를 결정하는 것도 실습생들에게는 중요한 공부다.

가격은 400∼1만5000원. 단팥빵의 경우 시중가격이 개당 600원 정도인데 이곳에서는 400원에 판다. 더 싸게 할 수도 있지만 일반 제과점과의 형평성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란다.

학교기업이라 하더라도 수업의 의미가 크다. 당연히 매출을 증대시키기 위한 편법이나 눈속임 등은 허용될 수 없다.

심 공장장은 “각 재료의 구입, 정량 지키기에서 마진 및 설거지에 이르기까지 대충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며 “빵집 운영도 교육의 연장인 만큼 학생들에게 도덕성을 중점적으로 가르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실습 중인 신명희 양(18)은 “당일 제작, 당일 판매가 원칙이기 때문에 주문이 많은 날은 밤을 꼬박 새우기 일쑤”라며 “수업 시간에는 빵을 만드는 것이 위주인 반면 여기에서는 일종의 제과점 운영과 소비자 기호파악 등의 노하우까지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 눈물 젖은 빵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는 인생에 대해 논하지 말라’는 말이 있지만 이들이 딱 그렇다. 이날도 한 실습생이 연신 주방에서 울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늘빵 때문. 빵에 바를 마늘을 수십 개씩 까다 보니 매운맛 때문에 안 울래야 안 울 수가 없다.

인기 품목인 크로켓 만드는 것도 이들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크로켓 속은 양을 재서 담을 수 가 없고 손의 감으로 넣어야 하는데 그 조절이 쉽지 않다는 것. 길거리의 붕어빵 장사 아저씨처럼 한 번에 척 집어서 담아야 하는데 할 때마다 양이 들쭉날쭉하기 일쑤다.

실습은 채 한달이 못 됐지만 3년 내내 빵과 씨름하며 살다보니 적어도 이 분야에 있어서는 전문가라고 부를 만하다.

잠시 쉬는 시간에 학생들이 좋은 빵 고르는 법을 살짝 귀띔해 준다.

“제과점에서는요, 진열된 것 중에 제일 뒤에 것을 사야해요. 그게 제일 나중에 나온 빵이라 신선하거든요. 또 생크림 케이크는 그날 만든 것이 가장 맛있지만 보통 케이크는요, 만든 지 2, 3일된 것이 맛있어요. 크림이 빵에 스며들어서 촉촉해질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학생들은 “아직 우리만의 특성 있는 빵을 만들지 못했지만 더 공부해서 학산제과점만의 독특한 빵과 맛을 개발하고야 말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학산고 빵 문의 063-533-5582

정읍=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