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이수훈]바깥 세상을 보자

  • 입력 2004년 9월 16일 19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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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가와 사회의 관심과 에너지가 온통 내부 이슈들에 치우쳐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시작으로 친일진상 규명, 과거사 정리, 국가보안법 개폐, 국가정체성 문제 등을 놓고 논쟁이 치열하고 그에 따른 균열과 갈등이 심각하다. 그보다 더한 문제는 그런 논쟁이 이성적 방식과는 거리가 있으며, 사회 갈등도 파괴적 성격을 갖고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상황이 초래된 데는 한국사회 내부의 균열구조가 복잡다단한 측면에서 비롯됐지만 정치권에 적잖은 책임이 있다. 정치권은 어떤 사안이 불거지면 일단 그것을 정쟁의 소재로 삼는 구태를 벗지 못하고 있다. 영향력이 큰 정치인들이 문제의 본질을 정치적 목적에 따라 변질시키기 때문에 합리적 공론화와 건설적 문제 해소가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내부문제로 국력 소모할 땐가▼

영향력으로 치면 정치권에 못지않은 언론과 비정부기구(NGO)들도 주어진 역할을 올곧게 하고 있는지 자문해 봐야 한다. 사회정치적 의제를 공정하게 선정하고 공론화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지, 문제를 불필요하게 증폭시키고 정치화하는 구실을 하지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언론과 NGO는 사회적 공기(公器)로서 본연의 자세를 견지할 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찬반 양 진영의 주장대로 한국은 지금 내부 문제로 국력을 소모할 처지에 있지 않다. 사회통합을 통해 에너지를 모으고 역동성 넘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긴박한 과제를 안고 있다. 게다가 한국은 개방국가이며 기본적으로 대외수출을 통해 경제를 끌고 가는 무역국가다. 그런 잣대로 말하자면 한국은 세계 11위 국가다. 하지만 바깥 세계에 대한 정부나 일반 국민의 수준이 그 정도가 되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국가의 관심과 에너지가 바깥 세계에 좀 더 두어져야 마땅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바깥을 보면 국가전략적으로 산적한 과제들이 있다. 첫째, 대규모 파병을 해 놓은 이라크 문제가 있다. 이라크는 아직 전쟁 중이며 매우 위험한 지역에 우리 군대가 가 있다. 그런데 이라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큰 관심을 갖는 것 같지 않다. 둘째, 미국 대선이 두 달도 남지 않았다. 대선 결과에 따라 북한 핵문제와 한미관계 등 우리 안보의 핵심 사안들에 파장이 오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체계적 관심도 볼 수 없다. 셋째, 고구려사 문제로 와글와글하더니 중국도 어느새 우리의 지평에서 사라진 느낌이다. 우리의 최대 교역상대국이자 최대 투자국인 중국을 주목하지 않는 것은 위험하다.

이 밖에도 국가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걸린 국가와 해외지역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개방체제이자 무역국가인 한국은 외부세계의 동향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전략적 이해가 걸린 국가나 지역을 상대하는 것이 국가운영의 골격이 되어야 한다.

수출을 해서 먹고사는 국가에서 해외에 대한 지식기반이 미흡하다는 것은 국가운영의 기초가 부실하다는 말과 같다. 현재 국책연구기관이나 민간연구소, 대학 부설 연구소들이 다수 있지만 이 기능을 담당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의 전략목표, 이에 걸맞은 정책과 외교를 펼치기 위해 필요한 강대국이나 지역에 대한 학술적이고 지정학적인 연구를 수행하는 제도가 시급하다. 정부가 고민해야 할 과제다.

▼대통령은 대외분야 치중해야▼

마침 노무현 대통령이 카자흐스탄, 러시아를 순방하는 외교 행보에 나선다. ‘동북아시대’ 구현을 국정 목표로 내건 대통령으로서 이번 러시아 방문은 중대한 의의를 갖는다. 이후 연말까지 30여일 동안 10여 개국을 방문하는 활발한 정상외교를 펼칠 계획이라고 한다. 정상외교의 초점도 자원 산업 통상 분야에 두어져 있고, 신흥국가들이 주된 방문국이다. 현재 한국이 당면한 경제 현실을 고려할 때 시의적절하고 바람직한 행보라고 본다. 안살림을 총리에게 맡긴 이상 대통령은 핵심 국정과제를 챙기는 일을 제외하고는 대외분야에 치중하는 국정운영의 틀을 국민에게 보여 주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이수훈 객원논설위원·경남대 교수·국제정치경제 leesh@kyung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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