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함인희/‘超위험사회’ 누굴 믿어야 하나

  • 입력 2004년 6월 22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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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디앤무’가 예기치 않은 폭우를 뿌리고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본격적인 장마철도 머지않은 모양이다. 한데 태풍 이름만 낯설 뿐 방송 카메라에 잡힌 태풍의 모습이 왠지 익숙하다. 맥없이 무너진 비닐하우스, 흙더미에 잠긴 채소, 진흙탕 위로 둥둥 떠내려가는 과일을 지나 망연자실해 두 손 놓은 채 하늘을 바라보는 농민의 원망어린 눈빛이.

▼수해… 불량만두… 김선일씨 피랍▼

이제 머지않아 곳곳에 홍수 피해가 속출했다는 소식과 더불어 무너져 내린 흙더미 속에서 가재도구 하나라도 더 건지기 위해 애쓰는 수재민의 눈물겨운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뒤 이어 돼지저금통을 손에 든 초등학생으로부터 이웃의 불행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는 자원봉사자에 이르기까지 각계의 온정이 답지하고 있다는 훈훈한 소식을 접할 것이고, 군부대 장병들의 헌신적 복구작업에 가슴을 쓸어내릴 것이며, 신문 한 면엔 불우이웃돕기 성금기탁자 명단이 오를 것이다. 올여름이라 하여 예외이겠는가.

불과 두어 주일 전엔 ‘불량 만두소’ 파문이 전국을 강타했다. 이번에도 국민은 너나없이 분노했다. 어찌 먹을 것을 갖고 이토록 장난을 치나. 대기업도 그 불량 만두소를 넣었다니 우린 이제 누굴 믿어야 하나. 만두소뿐이랴. 유통기한 지난 식품 때문에 식중독이 성행하고 수입농산물에선 유해물질이 과다하게 색출된다 하니 도대체 무엇을 먹어야 하나.

광우병 수입소 공포에 조류독감으로 인한 닭고기 기피의 기억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데, 이번 만두 파동이 진행되는 과정 또한 왠지 친숙하다. 들끓던 분노가 지나가자 선의의 피해자들이 나왔다 하여 ‘만두 안전시식 행사’가 등장하고, 식품안전 위협 행위에 대해서는 거금의 벌금을 부과하겠다는 엄포성 조치가 준비 중이란 보도가 이어졌다. 이만한 종류의 파동에는 이미 높은 면역성을 자랑하는 우리 국민은, 여론이 잠잠해지면서 어느새 탕수육 시키면 나오는 중국요리집의 군만두 서비스를 기다리고 있다지 않은가.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론’은 우리네를 비춰보는 데에 더없이 훌륭한 거울인 듯하다. 벡에 따르면 과거에도 위험은 상존했으나 현대사회의 위험은 본질적으로 그 성격을 달리한다는 것이다. 곧 예전의 위험은 우리의 감각기관을 통해 즉각 감지할 수 있었기에 원인 규명이 상대적으로 용이했으며, 위험의 파생 효과는 위험 발생지역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한다. 그러나 현대사회로 들어서면서 위험은 자신의 실체를 쉽게 드러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공해처럼 위험의 결과가 누대에 걸쳐 나타나기도 하고, 중국 변방에서 발생한 사스가 아시아 전역의 경제를 강타한 것처럼 그 효과도 일파만파 확대되어간다는 것이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위험의 ‘성찰적 성격’이 강화된다는 사실이다. 곧 무엇이 위험하고 얼마나 위험한가, 위험을 야기한 원인 규명에서부터 위험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의 모색에 이르기까지 전문지식과 정보, 그리고 전문가 집단의 판단 능력이 결정적으로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벡의 분석에 따른다면, 지금 우리 사회는 전근대적 유형의 위험에서부터 성찰적 유형의 위험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위험이 공존하는 ‘초위험사회’임이 분명하다. 동일한 유형의 피해를 반복하는 사회, 분노를 뒤로하고 곧 기억 상실에 빠지는 사회, 그것도 모자라 최근엔 전문가 집단의 권위를 편파적 권력 행위로 몰아붙이고 만 ‘과잉 민주주의’ 사회임에랴.

▼전문가의 권위도 무시하는 사회▼

설상가상으로 멀리 이라크에서 날아온 김선일씨 납치 사건을 접하고 보니 이제 국민은 마음 둘 곳이 없다. 우리네 정부는 세계적 규모로 확산되고 있는 다종다양한 위험의 절박함을 적시에 포착할 수 있는 마인드를 키우고 있는 건지. 그저 시간이 해결해 주기만을 안이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위험을 정공법으로 헤쳐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정부, 더불어 국민생활의 안전과 안녕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지도자가 그리울 뿐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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