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영호/韓美 신뢰기반 문제없나

  • 입력 2004년 5월 21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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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2사단 병력의 이라크 차출 결정과 더불어 주한미군 감축이 확실시되면서 한미관계에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한미동맹은 6·25전쟁이라는 엄청난 희생의 대가였고 ‘이승만 외교’의 성과다. 한미동맹을 통해 대외적 안정감을 확보함으로써 한국은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 탈냉전 이후 미국은 제국적 위상을 갖는 국가로 등장함으로써 한미동맹은 이전보다 더욱 중요한 우리의 안보 자산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미군 차출… 이상기류▼

그러나 이번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 결정은 그동안 누적되어 온 불편한 한미관계의 직접적 결과라는 점에서 향후 한미동맹에도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북한의 핵 개발과 군사적 위협 때문에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한국이 이라크에 전투병을 파병해 줄 것을 기대하면서 군부의 주한미군 차출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또한 미국은 2006년까지 110억달러를 투입해 주한미군을 강화하겠다는 안까지 제시하면서 한국 정부를 설득했다. 이는 한국 연간 국방비의 80%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다. 그러나 국내 여론을 내세워 비전투병 파병을 결정한 노무현 정부에 대해 미국이 느낀 서운함과 실망은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비전투병 파병마저도 10개월 이상 지지부진하면서 미국의 대한(對韓) 신뢰도는 크게 떨어졌다. 그 결과 미국은 노 대통령의 탄핵이 기각되자마자 주한미군 차출을 한국 정부에 통보했다.

갑작스러운 주한미군 차출로 발생할지도 모를 군사력 공백을 메울 우리 군의 군사적 대응 능력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아니다. 한미동맹의 신뢰 기반 붕괴로 인해 한반도 유사시 한미공조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정치 전략적 측면의 문제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동맹은 단순한 군사력의 공조를 넘어 확고한 상호 이해와 신뢰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한미군을 포함한 미국의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검토(GPR) 문제에 대해 정부는 뚜렷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청와대측은 GPR와 관련해 주한미군의 재조정도 이뤄질 것으로 예측하고 이에 대해 준비를 해 왔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는 납득하기 어렵다. 정부는 이 문제를 공론화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대응책을 제시하는 데에도 극히 미흡했다. 올해 초 미군 재배치 계획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쉬쉬해 온 것은 4·15총선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의혹도 제기된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국가안보 문제를 국내 정치적으로 이용한 데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미국은 기존의 해외 미군기지를 4개의 범주로 재편하고 이에 상응해 동맹국의 등급을 매기려고 한다. 정부는 우리가 어디에 속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되는지를 명확히 하고 미국과의 향후 협상과정에서 우리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또한 동아시아 지역의 미군 재배치 문제는 정부가 제창하는 ‘동북아경제중심’과 어떤 관련성을 갖는지도 밝혀야 한다. 주한미군이 주일미군보다 그 지위가 격하될 경우 일본의 한국에 대한 영향력이 증대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안보구도와 경제발전은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 또한 주한미군이 감축되고 한미동맹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경기 평택시의 320만평 땅을 새로 주한미군에 제공할 경우 국민적 지지를 받기 어렵다는 것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한미동맹 장기적 청사진 밝혀야▼

이제 한미동맹과 관련해서 대북 위협 인식에 대한 공유뿐만 아니라 한미간의 협력과 상호신뢰 회복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증대하고 있다. 정부는 한미간에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땜질식 처방에 급급하지 말고 한미동맹의 장기적 청사진을 밝혀서 국민의 안보 불안을 해소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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