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엔…]동아일보로 본 2월 셋째주

  • 입력 2004년 2월 15일 19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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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고아들 가운데 왼쪽에서 두번째 소년이 군복을 걸쳐 입은 모습이 눈에 띈다.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자료사진
6·25전쟁고아들 가운데 왼쪽에서 두번째 소년이 군복을 걸쳐 입은 모습이 눈에 띈다. -다큐멘터리 한국전쟁 자료사진
▼밤거리의 恐怖…强盜 未然 根絶策 焦眉▼

수도 서울의 밤거리는 이대로 방치되어야 하는가? 갑오년 들어 겨우 한 달 반. 지난 十六일 현재 통계수자는 벌써 수조차 헤아릴 수 없는 대소 강절도 사건의 연발을 표시하고, 특히 그중 ‘강력범’만도 ‘三十四건’에 달하며, 더욱이 이 수자에는 갑자기 사태 난 ‘二十건’의 ‘군복강도’(살인 二건 포함)가 왕좌(王座)를 점하고 있다.(…)

경찰과 합동방범순찰대의 눈을 피하여 횡행하는 강력범의 대부분이 군복을 착용한 무장강도라는 점에서 여기 하나의 강도사건 미연 방지와 사건수사의 맹점이 들어나고 있다.

국방당국에서 기이 실시 중에 있는 ‘군복 취체’에도 불구하고 강도범의 대부분이 군복강도라는 점, 또 그들 거의 모두가 ‘총’ 등 무기를 휴대하고 있다는 점, 또 그들의 대부분이 그 어떠한 증명서를 소지하고 있는 점 등은 경찰의 이에 대한 취체와 단속에 작지 않은 애로가 되어 있는 것이다.<동아일보 1954년 2월 19일자에서>

▼“군복 입으면 단속 못해”… 강-절도 악용▼

휴전 뒤 반년, 한국사회는 재건을 위해 역동하고 있었으나 물자와 일자리는 부족했고 치안은 여전히 불안했다.

6·25전쟁 발발 당시 10만명에 불과했던 국군 병력은 종전 무렵 60만명 가까이로 늘었고, 전쟁에서 사용된 군복과 총기류는 제대로 회수되지 않았다. 시중에 유통되던 군복 중 상당수는 군인을 사칭하는 데 사용돼 ‘밤거리 공포’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문제는 이들 ‘군복 차림의 강도’들에 대해선 수사와 단속이 어려웠다는 점이다. 이들은 무기까지 갖고 있었던 데다 군인에 대한 단속은 군(軍) 수사기관만 할 수 있었기 때문.

54년 1월 초부터 2월 16일까지 일어난 일반 강력사건 14건 중 13건의 범인이 체포된 반면 군복강도사건은 20건 중 무려 12건이 미제였다. 이들 군복강도 중에 실제 군인이 있었는지, 또 있었다면 어느 정도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위 기사가 나간 이튿날, 내무·국방장관이 ‘군복과 무기, 야간통행의 철저 단속’을 다짐하는 공동 담화를 내놓았지만그 뒤로도 ‘군복강도’의 출몰은 다반사였다. 56년까지 불법 군복착용자를 단속한다는 기사는 한 달에 한번꼴로 등장했다. 하루 7만건의 군복을 단속했다는 당국의 통계도 있다.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군복이 오늘날 ‘밀리터리 룩’이란 이름의 패션으로 다시 등장해 젊은층의 사랑을 받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군복이 오늘날 ‘밀리터리 룩’이란 이름의 패션으로 다시 등장한 것을 보면 정말 격세지감을 느낀다.

서영아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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