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현장]시름뿐인 독산동 '고기시장'

  • 입력 2004년 1월 18일 18시 16분


코멘트
저녁 무렵 서울 금천구 독산동 ‘고기시장’(일명 우시장)의 먹자골목.

한창 북적거려야 할 식당에 손님이 하나도 없다. 싸고 선도가 뛰어나 손님 많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아직 개시도 못한 주인들이 아예 일손을 놓고 드러누워 있었다. 식당 ‘포차2호’의 김금자씨(47·여)는 “어제부터 손님을 한 테이블도 못 받았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한때 서울 고기 수요의 35%를 공급해 성동구 마장동 고기시장과 함께 서울에서 양대 고기시장의 명성을 자랑하던 독산동 고기시장이 개점 이래 최악의 사태를 맞고 있다. 한 해 장사의 30∼40%를 차지하는 설 대목에 손님들의 발길이 뚝 끊겨 버린 것.


설을 앞둔 18일 오후 서울 금천구 독산동 고기시장. 찾는 손님이 없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마저 풍기고 있다. -박주일기자

▽지난해 유통량의 3%=쇠고기 도소매업자가 집중적으로 몰려 있는 협진상가에 들어서니 고기를 다듬는 상인뿐 손님이 없다. ‘해성정육점’ 신해숙 사장(63·여)은 “지난해 설 땐 하루 매상이 1000만∼2000만원 정도였는데 이번 설엔 100만원도 안 된다”고 말했다.

특히 1, 2일만 지나도 값어치가 뚝 떨어지는 소 등골이나 곱창은 타격이 더 컸다. 등골만 취급하는 김춘자씨(61·여)는 “등골은 이틀만 지나도 팔 수 없어 벌써 며칠째 그냥 버리고 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쇠고기가 안 팔리다 보니 야채시장도 덩달아 피해를 보고 있다. ‘우리식당’ 김애영 사장(48·여)은 “한 접에 7만원 하던 오이가 8900원, 한 관에 1만6000원 하던 상추는 1000원으로 떨어졌지만 찾는 손님이 없다”고 말했다.

독산동 상인연합회 최선규 회장은 “경기가 안 좋았던 지난해 설 때와 비교해도 지금의 유통량이 3%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이대로 가다간 독산동의 모든 가게가 문을 닫을 판”이라고 말했다.

▽무성의한 당국=이처럼 고기시장이 타격을 입은 것은 장기불황의 여파에다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파동 때문. 관공서와 기업의 윤리규정 강화로 갈비 등 선물 수요가 뚝 끊긴 것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상인들을 더욱 우울하게 하는 것은 이런 상황에도 당국이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9일 농림부 장관을 초청해 ‘국산 쇠고기 시식회’를 열려고 했지만 농림부에서 바쁜 일정을 이유로 거절해 무산됐다.

농림부 안호근 축산위생과장은 “장관 대신 국장이 참석하려 했으나 상인들이 거부했다”면서 “미국과의 쇠고기 협상 등 시급한 사안이 많아 일일이 신경을 쓰기가 어렵다”고 해명했다.

금천구의 한 관계자는 “예전엔 관공서에서 설 선물용 갈비세트 등을 구입했지만 ‘공무원 선물비용 5만원 이하’ 규정 때문에 어떻게 도와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