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환수기자의 장외홈런]이만수코치, 당신에게 부끄럽습니다

  • 입력 2003년 11월 3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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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인으로서 야구를 사랑하고 열심히 하는 것 이외의 것이 필요하다면 어쩌면 나는 부적격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재계약마저 불발돼 졸지에 국제 미아가 된 이만수 코치가 자신의 홈페이지(www.leemansoo.co.kr)에 올린 글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이 코치는 지난해 월드시리즈 때 본지에 ‘이만수 칼럼’을 보내온 가까운 사이. 당시 기자는 그의 해박한 야구 지식에 깜짝 놀랐다.

또 이를 계기로 그가 홈페이지에 기고하는 장문의 글들을 애독하면서 그의 따뜻한 인간미와 폭넓은 인간관계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기자가 ‘놀랐다’는 표현을 쓴 것은 그 자체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

문제는 국내의 많은 야구인과 관계자들이 기자보다 더한 악의적인 편견을 갖고 있다는 것. 최근 이 코치의 삼성 입단이 좌절된 일련의 과정이 이를 잘 보여준다.

삼성과 이 코치 사이는 이 코치가 40세까지 현역 생활을 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틀어지기 시작했다. 우승에 목말랐던 삼성으로선 벤치를 지키는 그가 아무리 대구 팬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슈퍼스타지만 엔트리만 좀먹는 애물단지로 여겨졌을 터.

결국 이 코치는 39세에 ‘조기 은퇴’했다. 더욱이 이 코치는 6년 전 해외 연수를 떠나는 과정에서 대우 문제로 실랑이를 벌이다 아예 한 푼의 지원도 받지 않기로 해 삼성과 깊은 감정의 골을 남긴 채 미국으로 떠났다.

삼성이 갖고 있는 또 다른 편견은 ‘이 코치가 미국 생활을 오래 해 국내 선수를 전혀 모른다’는 것. 때문에 이 코치의 에이전트인 김종훈씨가 제시한 선동렬급 특급 대우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황당한 요구로 비쳤다.

그러나 앞의 사례들은 이 코치의 한쪽 면만 비정상적으로 부각시킨 경우. 이 코치는 말도 통하지 않는 미국 땅에서 오로지 성실함 하나만으로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그 유급 코치가 되는 쾌거를 이뤄냈다.

또 그가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작성했다는 수백 페이지에 이르는 ‘코치 노트’는 국내 프로야구를 살찌울 토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결국 우리의 잘못된 편견이 올 겨울 이 코치를 차가운 거리로 내몰고 말았다는 부끄러운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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