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현장칼럼]성인미술치료

  • 입력 2003년 1월 23일 17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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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그린 그림에서 무의식을 읽어내고 심리적 갈등 구조를 파악해 치유하는 미술치료. 그 대상이 아이 중심에서 최근 성인으로까지 확대되며 부부 갈등을 푸는 열쇠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개설된 한국성과학연구소(이윤수 비뇨기과 부설) 미술치료 과정에는 잘못된 습관, 시누이 및 시어머니와의 갈등, 성격 차이, 성생활 트러블, 배우자 외도 등으로 인한 부부 고민이 접수되고 있다. 부부들은 수십권의 잡지를 들추며 마음이 강하게 끌리는 사진과 그림을 오려 붙이는 콜라주 작업을 통해 내면적 갈등과 무의식의 일단을 드러낸다. 연구소 정혜숙 미술치료사는 “성인에게는 그리기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콜라주 기법이 더 효과적”이라며 “미술표현을 통한 ‘고백성사’ 과정에서 막연했던 갈등을 구체적으로 인식하며 사태를 직시하게 된다”고 했다. 치료는 통상 ‘아내와 남편의 습관 평가→과거 성장 과정에 대한 기억→욕구불만의 요인 추적→부부생활에 대한 긍정적 기억 떠올리기→부부관계 회복’의 수순을 밟는다. 상담차 이곳을 찾은 부부들이 직접 만든 콜라주를 당사자의 독백 내용과 함께 옮겼다.》

●회사원 남편(29)을 둔 직장여성(30)

▲남편은 화장실에 너무 자주 간다. 소변이든 대변이든, 너무 자주 간다. 남편에게 화장실에 책상을 갖다 놓으라고 할 정도다. 회사를 다녀오든 출근을 하든 꼭 나보단 화장실을 먼저 찾는다.(왼쪽위사진)

▲항상 핑계를 댄다. 남의 탓을 많이 한다. 미안하다, 잘못했다는 말은 안하고 누구 때문에, 이게 잘 안 돼서 등 다른 탓이나 핑계를 댄다. 항상 부정적이다. TV에 나오는 사람들도 남편에겐 좋은 사람이 없고 그들의 트집을 잡는다. 극단적인 말을 자주 한다. 바람피우면 가족을 다 죽이겠다느니, 죽어 버리겠다느니, 의심이 많다.(오른쪽위사진)

▲어떤 일이든 불안한 생각에 반복적인 행위를 한다. 잔에 물을 따를 때에도 물 따르기를 반복하다가 물을 넘치게 만든다.(오른쪽아래사진)

▲그림의 떡. 연하 남자라고 남들은 항상 즐거울 거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성에 대한 환상이 있었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생각은 적극적으로 갖고 있지만 실천이 안 된다. 대화도 필요한 걸 알고 있지만 조금 창피하다는 생각도 든다.(왼쪽아래사진)

●회사원 남편(30)을 둔 주부(28)

▲시어머니는 너무 아이 같고 유치하다. 귀여운 척하는 것이 보기 싫다.(왼쪽위사진)

▲시어머니가 가면을 얼굴에 뒤집어쓰고 나를 대하시는 것 같다. 나는 관계를 개선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많은 사람에게 본인만 아주 착하고 며느리는 다 못된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오른쪽위사진)

▲남편은 정리정돈이 안 돼 있는 것을 보면 너무 괴로워한다. 너무 깔끔하다.(오른쪽아래사진)

▲아버지는 너무 무능했다. 사고만 치고 늘 누워 있었다. 먹고 입고 자고 하는 어떤 것도 스스로 하지 못했다. 고추만 있으면 남자냐…. 남자로서(애들의 아빠로서 어머니의 남편으로서) 역할을 해야지.(왼쪽아래사진)

▲남편은 잡식성이다. 아무 여자나 가리지 않는다. 남편을 토막내어 죽이고 싶다. 토막난 것은 여러 여성의 표현이다.(왼쪽사진)

▲성에 대해 너무 소녀적이고 동화적인 환상을 가져왔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남편과의 성생활은 벌레와 쓰레기처럼 더러웠다.(오른쪽위사진)

▲내 인생은 늘 반쪽이었다. 반쪽만 보고 듣고 냄새맡고 만지고 느끼고 생각했다.(오른쪽가운데사진)

▲화장품 액세서리를 사모으는 것으로 정신을 돌리려 했다. 쇼핑 귀신이 붙어다닌다는 말도 듣는다. 술집, 노래방, 춤추는 곳을 제외하고는 어디나 관심있게 기웃거린다. 그러나 늘 머리가 무겁고 어둡고 힘들고 고통스럽다. 생각이 좀 더 맑아졌으면….(오른쪽아래사진)

▲남편은 늘 동시상영이다. 항상 둘 이상의 여자와 관계를 맺어왔다.(가운데사진)

●종교인 남편을 둔 50대 초반 주부

▲마음이 교만해져서 남편에게 상처를 주었다. 나는 뭐든 잘하고 실수하지 않고 대인관계도 잘하고 음식도 잘한다면서. 그래서 남편을 무시하고 경멸했다.

▲남편에게 폭언하면서 힘으로 하지 못한 것을 말로 해댄다. 어떤 때는 재판관이 된 것처럼 내가 행동하기도 한다.

●회사원 남편(37)을 둔 주부(35)

▲시누이가 집안 살림에 참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 쓰는 일에 시어머니처럼 화내며 참견한다. 말로는 “오빠가 힘드니까 쓸데없는 데 돈 쓰지 말고 빨리 집을 넓혀 가라”고 하는데, 신경 써주는 척하지 말고 가만히 보고만 있었으면 좋겠다.(왼쪽위사진)

▲얌체 같고 얄미운 시누이를 안 보이는 곳으로 멀리멀리 보냈으면 좋겠다.(오른쪽위사진)

◀화풀이를 딸에게 하다보니 딸은 항상 남편 옆에서 자려고 해 나는 게처럼 잠자리를 이 방 저 방 옮겨다닌다. 깊이 잠을 자지 못하고 자주 깨면서 새벽이나 아침에야 잠에 들다보니 우울증에 시달린다.(오른쪽아래사진)

◀이제 예쁜 옷도 사 입고 남편에게 잠자는 모습보다는 단정한 모습을 보이고 싶다.

▲남편과의 성생활은 맛있는 오렌지 주스를 시원하게 쭉 들이켜는 기분이다.(왼쪽아래사진)

▲내가 마음을 털어놓으니 시누이도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한다. 시집을 가야겠다는 말도 내게 한다. 예전에는 사생활 침해라고 그런 질문에 전혀 대답하지 않았다.

●직장인 아내(45)를 둔 전문직 남편(47)

▲아내와의 성 트러블이 생긴 것은 내가 청년기에 잘못된 성 인식을 가졌기 때문인지 모른다. 고 1 봄부터 나는 성남과 사당동에 벌집처럼 모여있는 사창가를 아무런 느낌없이 친구들과 몰려다녔다.(오른쪽맨위사진)

▲상대가 여럿일수록 좋을 것 같다. 항상 선정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집에서 안 되는 것을 외부에서 찾는다.(오른쪽가운데사진)

▲새로운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한 애착과 기대가 항상 새롭다.(왼쪽사진)

▲밤이 되면 편안하지만, 왠지 방황하는 듯한 공허한 느낌이 나를 괴롭힌다.(오른쪽아래사진)

●3년 외도 후 가정으로 돌아온 남편을 둔 40대 중반 주부

▲나는 남편에게 몸매를 드러내는 것이 싫었다. 나는 나무막대기 같았다.(왼쪽사진)

▲시어머니는 오후 9시만 되면 “너 어느 방에서 잘래. 나하고 같이 자자”면서 부부의 잠자리에 끼어들었다. 남편은 견디다 못해 술을 한잔 마시고 들어와서 “왜 이러세요, 어머니” 하고 큰소리를 쳤지만, 또다시 며칠 후부터 원래대로 돌아갔다.(가운데사진)

▲나는 비관이란 틀 속에 내 생각과 행동을 가두어 놓았다. 억눌린 생각 속에서 여러가지 일들을 겪었다. 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낮아진 내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낮아지고 낮아진…. 아직 나에겐 낮아져야 할 부분이 많지만, 나를 낮추는 과정에서 느낀 점들이 많았다. 나는 피클이 되기를 기다리는 오이다. 맛있게 되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인내하고 시행착오도 겪어야 한다.(오른쪽사진)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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