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인생의 음악]카잘스의 바흐 무반주 첼로 조곡

  • 입력 2002년 12월 17일 18시 08분


노트북을 열며 과연 ‘내 인생의 음악’이라는 것을 거론할 만큼 충분한 연륜이 쌓였을까 하고 자문해 본다. 한편으로 ‘가슴에 새겨진 수많은 음악들을 원고지 몇 장으로 채워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중학생 시절, 고전음악을 처음 접했다. 앙세르메가 지휘했던 베토벤의 9번 교향곡, 정경화가 연주한 멘델스존의 바이얼린 협주곡 중 2악장, 그리고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인 ‘크로이처’와 ‘봄’이 함께 담긴 오이스트라흐 연주 음반 등은 당시의 설레임을 지금까지 전해주고 있는 작품들이다.

본격적으로 음악을 듣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였다. 학내 고전음악감상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좀더 체계적인 음악감상이 이뤄졌다. 교내 음악감상실의 DJ로 봉사활동 하는 시간을 이용해 나의 고전음악 탐험은 그 범위를 넓혀갔고, 고전음악에 대한 치열한 논리와 해박한 지식을 펼치는 동기와 선후배들 덕에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얕음을 깨닫기도 했다.

당시까지 지휘자의 최고봉이라 여겼던 카라얀에 대한 비판을 들었을 때의 충격, 토스카니니와 확연하게 대립되는 푸르트뱅글러에 열광하던 매니아들, 생소했던 말러와 부르크너의 교향곡들에 대한 탐구…. 지금도 음악 칼럼니스트로 문명(文名)을 날리는 이들이 많을 정도니 당시 우리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상당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동안 내가 섭렵한 많은 음악 중에서 하나만 꼽으라면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이다. 5년이나 10년 전이라면 바흐 대신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라는 답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갈수록 음악감상의 오랜 여정이 도착하는 종착지는 J. S. 바흐가 아닌가 싶다. 독주곡이라는 형식적인 한계에도 불구하고 결코 단순하게 들리지 않는 음의 진행과 주법, 그리고 감상할 때마다 다른 느낌을 주는 ‘무한한 변형’이 이 곡을 자꾸만 집어들게 만드는 이유라 하겠다.

이 작품의 완전한 형태의 악보는 바로 카잘스에 의해서 발견됐다고 한다. 바흐가 죽은지 200년이나 지난 뒤였고 당시 카잘스는 10대였다. 그러나 그가 이 곡을 음반으로 녹음한 시기는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나이인 60살 때였다. 바흐에 대한 경외감이 담긴 이 음반을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은 아마도 카잘스가 악보를 발견했을 때의 떨림에 버금가는 것이었지 않나 싶다. 1930년대의 모노 녹음이지만, 제1곡의 전주곡의 울림이 시작되고 나면 음질에 대한 불평은 저절로 사라지고 만다.

촌각을 다투는, 흡사 전쟁터와도 같은 증권 시장이지만 퇴근하는 길에서나 눈 오는 창 밖을 내다보며 커피 한 잔과 함께 카잘스의 첼로 독주 소리를 듣노라면 어느 새 새롭게 재충전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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