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의 테마여행][여행]소설 ´뇌´ 속의 섬 남프랑스 레랭

  • 입력 2002년 10월 24일 15시 55분


레랭의 두번째섬, 생 토노라의 성채. 푸른 바다와는 사뭇 대조적인 느낌이다./사진제공 이정현
레랭의 두번째섬, 생 토노라의 성채. 푸른 바다와는 사뭇 대조적인 느낌이다./사진제공 이정현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새 소설 ‘뇌’. 그가 쓴 ‘개미’ 등의 작품에서 이미 놀라울 정도의 과학적 치밀함을 경험한 독자라면 이번 작품에선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을 들여다볼 수 있다. 특히 작품의 배경인 남프랑스 칸에 인접한 레랭(Iles des L´erins)은 신비스러운 이미지와 특별한 사연으로 이름높다. 남프랑스 해변 코트다쥐르로 떠나는 유니크한 겨울 여행….

●정신과 종교의 기묘한 공존, 레랭

레랭은 칸 앞바다에 자리잡은 두 개의 섬, 생트 마그리트(Ile Ste-Marguerite)와 생 토노라(Ile St-Honorat)로 이루어져 있다. 칸의 옛 항구인 뷔으 포르에서 배로 15분이면 닿는다.

생트 마그리트는 두 개 중 큰 섬. 소설 ‘뇌’의 주무대다.

이 섬이 작가 베르베르에 의해 처음 주목받은 것은 아니다. 2세기 전 쓰여진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철가면’도 바로 이곳을 무대로 했다. 이 섬에는 ‘철가면’의 모델이었던 수수께끼의 죄인이 갇혀있던 성채가 있다. 오랫동안 감옥으로 사용되었고 여전히 그 형태가 보존돼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성채의 망루에선 칸과 지중해의 멋진 경관들을 바라볼 수 있다. 섬과 육지를 갈라 놓은 바다는 물살이 빠르고 거칠어 죄수가 쉽게 탈출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감옥으로서는 최적의 입지조건이었는지도 모른다. 소설 ‘뇌’에서는 주인공인 여기자가 쉽게 건너편 섬으로 헤엄치는 것으로 묘사됐지만 이곳에 갇힌 죄수들은 좀처럼 탈출을 감행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영화나 연극으로 다양하게 각색돼 알려진 철가면은 영국 귀족이었다는 설도 있고 합스부르크가의 여제(女帝) 마리아 테레지아의 연인이었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루이 14세의 쌍둥이 형이었다는 설도 있다. 물론 그 어느 것도 사실로 확인된 것은 없다.

또 원래는 벨벳 가면의 수감자였지만 그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면서 더 그로테스크하게 철가면으로 바뀌었다는 설도 있다. 어느 쪽이든 상상력이 풍부하고 로맨스에 열중하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걸맞게 포장되어 전해지는 셈이다. 뒤마가 소설을 쓴 것도 누군가 이런 구전을 소설화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 아니었을까.

17세기 이후 성채는 박물관으로 변신해 일반에게 개방되고 있다. ‘뮤제 드 라 메르(Mus´ee de la Mer)’가 바로 그것. 오래 전에 침몰한 해적선이나 화물선에서 건진 전시물들과 아름다운 벽화장식을 보존하는 지중해 박물관이다. 월요일과 겨울철엔 휴관한다.

베르베르는 생트 마그리트를 정신병원이 들어선 섬으로 묘사했다. 작가가 일부러 이 섬의 신비로운 이미지를 원용한 것을 보면 뒤마에 이어 섬에 또 다른 아이덴티티를 불어넣으려고 한 것은 아닌지….

‘뇌’나 ‘철가면’의 이미지로만 섬을 우울하게 상상할 것은 아니다. 칸과 섬을 오가는 배가 하루에도 10회 넘게 운행될 만큼 뭍 사람들이 이 섬에 갖는 애정은 대단하다.

섬 크기는 도보로 40분이면 넉넉히 돌아볼 정도. 그러나 막힌 곳 없이 탁 트인 지중해를 시야에 남김없이 담을 수 있고 여유롭게 피크닉을 즐기거나 바다낚시, 산책을 할 수 있다. 타인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일광욕을 즐기며 독서를 하는 사람들도 찾아볼 수 있다. ‘뇌’가 발표되기 이전에는 칸을 찾는 관광객들이나 코트다쥐르 인근 도시 사람들이 잠깐 즐기러 오는 공간이었지만 이제는 또 다른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침묵과 포도주의 동거

레랭의 또 다른 섬인 생 토노라는 생트 마그리트 섬에서 배로 약 15분 거리에 있다. 이곳에는 와인을 만드는 수도원으로 유명했고 지금도 와인을 생산하는 유서 깊은 ‘레랭수도원(Abbaye de L´erins)’이 있다.

이 수도원은 원래 생 토노라 수도사(성 마가렛의 오빠)가 7명의 사제들과 함께 5세기경에 건립한 것이다. 한때는 서유럽에 널리 영향력을 행사할 만큼 신성한 곳으로 알려져 있던 침묵의 수도원이었다. 베르베르 역시 소설 속에서 생트 마그리트 섬의 정신병원을 탈출한 여주인공이 잠시 숨을 고르는 ‘침묵과 정결의 서원을 세운 수도원’으로 묘사하고 있다. 아름다운 건물과 별도의 성채, 바다와 맞닿은 작은 포구가 햇빛을 찾아 남하하는 북유럽 요트족들이 잠깐 숨을 고르고 쉬었다 가는 휴양지 역할을 한다.

정오가 되면 시간을 알리는 수도원의 청아한 종소리가 걸음을 멈추게 하고 수도원과 이어진 포도밭에선 해풍에 실려오는 달콤한 포도향기가 오감을 휘어잡는다.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긴 회랑, 빛바랜 오렌지색 기와, 차가운 타일이 깔린 복도 등이 시간을 거슬러 여행자를 중세로 안내한다.

소설 속의 느낌과 놀라운 공통점은 방문자의 속삭임조차 불편할 정도로 조용한 수도원의 정적. 포도밭과 시간을 알리는 종루가 현실과 소설, 상상의 세계를 넘나들게 만든다. 물론, 그런 몽환적인 느낌들은 수도원 내 기념품점에서 파는 다양한 상품에서 분명히 깨어지지만….

이정현

레랭을 뒤로 하고 칸으로 돌아가는 배는 흔들림없이 차분하다. 1947년 칸의 뒤쪽 산중턱 마을 발로리스(Vallauris)에 살던 피카소도 레랭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멀리서 바라보는 레랭은 아침에 올라오는 은근한 해무처럼 예술가들을 자극하는 그 나름의 바이러스가 떠다니는 곳 같다. 작가적 상상력과 창작의욕을 자극하는 그런 열망 같은 것. 머리 좋은 베르베르도 같은 느낌을 갖지 않았을까?

이정현 여행칼럼니스트 nolja@worldpr.co.kr

●레랭의 관문 영화도시 칸, 잿빛골목 사이 영화속 가로등…바닷가 카페엔 ‘낭만의 파도’

1년 내내 햇볕이 내리쬐는 칸의 해변에는 최고급 호텔들이 운영하는 노천카페가 즐비하다. 파라솔의 색은 코트다쥐르를 상징하는 푸른색과 흰색으로 통일된 것이 특징이다./사진제공 이정현

레랭으로 가는 관문인 칸.

세계적인 휴양지로 너무나 잘 알려진 곳이지만 그 진정한 매력은 구(舊)시가의 골목길이나 주말에 열리는 선데이마켓에서 보다 생생히 느껴진다.

구 시가는 칸 영화제 현장인 컨벤션 센터(Palais des Festivals et des Congr`es) 앞 도로 끝에 있다. 신 시가는 칸 역과 해안 사이의 일대로 칸이 가장 붐비는 영화제 기간과 미모사 축제시즌(2월), 영화 판매시즌(9월)에 생생하게 살아나는 곳이다.

칸의 골목길 중에서는 단연 구시가에서 시작해 칸에서 제일 높은 전망대로 오르는 길이 근사하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잿빛 골목 사이로 프로방스 스타일의 꽃장식을 한 덧창들, 앤티크 스타일의 가로등이 발길을 비춘다. 바다를 향해 문을 열어젖힌 개방형 카페들은 형형색색의 테이블보로 한가로운 도시에 원색의 생기를 던져준다.

언덕 입구엔 작은 규모의 재래시장이 있다. 칸 주변 도시에서 나온 다양한 먹을거리들을 구경할 수 있다. 우리네 호박 엿장수처럼 땅콩과 아몬드가 든 누가(Nougat)를 파는 상인, 두툼한 치즈와 소시지를 풀어놓은 시골 아낙까지 살아있는 칸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여기를 지나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몽슈발리에(Mont Chevalier)언덕에 오를 수 있다. 한꺼번에 칸의 멋진 바다와 항구를 메운 요트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엔 17세기에 세워진 노트르담 데스페랑스 성당과 카스트르 박물관(Mus´ee de la Castre)이 있다. 카스트르는 19세기초 영국의 정치가가 살았던 곳으로 언뜻 봐서는 요새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다. 한때는 교회로 사용됐지만 1952년에 지금의 박물관으로 개조돼 아프리카, 남미 등지에서 온 전통 악기들과 개인 소장가의 기증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카스트르 밖으로 나오면 숨이 탁 트이는 공간을 만나게 된다. 쉬페르칸 전망대. 특히 항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과 수평선 너머에서 천천히 밀려오는 칠흑 같은 어둠이 뒤섞이는 해질녘의 풍경이 낭만적이다.

언덕에서 항구까지 돌계단으로 이어지는 산책길은 연인들이 밀어를 속삭이기에 적합하다. 칸 사람들은 이 길가에 카페를 만들어놓고 사르트르와 보부아르가 들렀던 곳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덤으로 안겨준다.

하지만 칸을 찾는 여행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거리는 역시 3㎞에 이르는 크로와제트 거리. 다양한 퍼포먼스를 즉석에서 보여주는 팬터마임꾼들과 댄서들이 바다와 고급 호텔, 명품 부티크가 나란히 달리는 이 거리를 메운다. 물론 이 거리에 있는 라 말메종(La Malmaison)박물관도 놓치고 지날 수 없는 곳이다. 마티스, 브라우너, 피카소 등의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어 이래저래 볼거리 풍부한 오후 산책길을 만들어준다.

크로와제트거리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칸의 광대./사진제공 이정현

●레랭 가는 길

1.칸을 거쳐

프랑스 파리에서 칸까지는 국내선 비행기(1시간 25분 소요, 매 시간 출발)를 이용해 니스공항까지 가는 방법과 TGV(5시간 30분 소요)를 타는 방법이 있다. 니스 공항에서 칸까지는 자동차로 25분 정도 걸린다. 30분 간격으로 셔틀버스가 다니며 헬리콥터 셔틀(6분 간격)도 마련돼 있다.

2.레랭가는 배

레랭을 돌아보는 유람선 투어가 마련되어 있다. 생트 마그리트섬으로 가는 배는 겨울철에는 편수가 줄어들긴 하지만 하루 평균 10회 이상 운항한다.

운항시간은 15분 정도로 요금은 왕복 9유로. 이곳에서 다시 15분 정도 가면 생 토노라섬에 도착한다. 칸에서부터의 요금은 왕복 8유로이고 두 섬을 모두 갈 수 있는 티켓도 있다. 배가 섬에 도착하면 관광객들에게 자유관광할 시간을 준다. 다음 배편을 확인하고 둘러보는 게 좋다.

생트 마그리트섬엔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숙박시설이 마련돼 있지만 일반 관광객들은 대부분 한나절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아침에 칸에서 출발하면 두 섬을 전부 돌아보고 점심 때쯤 돌아올 수 있다.

3.여행정보

칸 관광국 Tel: 33 4 93 39 01 01 / www.cannes-on-line.com

프랑스 관광부(www.franceguide.or.k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