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칼럼/최화경]아름다운 은퇴

입력 2002-06-27 18:40수정 2009-09-17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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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선홍 선수가 대표팀 유니폼 반납을 선언한 것은 월드컵이 개막되기 꼭 사흘 전이었다. 그 때는 참 궁금했다. ‘대회를 코 앞에 두고 왜 그랬을까. 끝난 다음에 해도 될텐데…’. 그 폭탄선언으로 후배 선수들이 동요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은근히 그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폴란드전에서 터뜨린 첫 골, 그리고 미국전에서 머리에 붕대를 감고 뛴 뜨거운 투혼. 황선홍의 선언은 바로 자신과의 약속이었음을 이제는 알 것같다. 이번 대회에 온 힘을 쏟아붓겠다는, 그리고 후회 없이 떠나겠다는 다짐이었다는 것을.

그의 나이 서른넷, 대학 2년 때 처음 태극마크를 달아 벌써 15년째다. 월드컵만도 네 차례나 나갔으니 그게 어디 보통 행운인가. 하지만 그건 우리 생각이고 황선홍 자신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대회마다 득점 기회를 번번히 날리는 통에 눈총을 받았고, 그래서 벼르고 별렀던 4년 전 프랑스 월드컵 때는 부상으로 벤치만 지켰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번에 그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던 것은 그래서였을까.

‘축구 황제’ 펠레는 1970년 멕시코 대회에서 브라질에 세 번째 우승컵을 안긴 뒤 대표팀을 떠났다. 4년 뒤엔 독일의 베켄바우어가 같은 길을 걸었다. 선수생활의 절정기에 영광과 함께 월드컵 무대에서 사라진 그들을 팬은 오래도록 기억한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축구 영웅들이 또 월드컵을 떠난다. 지단, 바티스투타, 칠라베르트…. 그리고 그 가운데 황선홍이 있다.

그렇다고 서운해하지 말자. 황선홍은 자신과의 약속대로 온 힘을 다해 뛰었고 4강 신화의 빛나는 주역이 되었다. 그는 지금 영광스럽게 떠나기를 원한다. “후배에게 자리를 비켜 주겠다”는 은퇴의 변(辨)도 아름답다. 이제 박수로 그를 보내주자. 그리고 4년 뒤 독일 월드컵에서 그 빈 자리를 메울 새 얼굴을 기다리자.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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