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가 블랙박스]무서운 선배보다 잘나가는 후배가 더 무서워

  • 입력 2001년 11월 12일 18시 39분


“배우와 건달은 깻잎 한 장 차이다.”

액션 연기를 주로하는 한 남자 탤런트가 해준 말이다. 실제로 예전 남자 배우들은 ‘한 액션’하는 인물이 많아 촬영장의 분위기가 살벌할 때가 많았다고 한다. 수많은 작품에서 선 굵은 액션 연기를 했던 장동휘나 박노식 선생은 실제 건달은 아니었지만 후배들로 하여금 오금을 저리게 할만큼 카리스마를 갖고 있었다. 평소에는 자상한 미소를 지닌 선배였지만 예의없는 후배들은 몇 번씩 혼쭐이 난 기억을 가지고 있다.

남성미의 대명사였던 이대근도 점잖은 신사 최무룡 선생 앞에선 꼼짝 못했고,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시트콤의 대가 오지명은 섬뜩한 눈매와 주먹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빠른 액션으로 선후배 모두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무서운 선배 덕에 촬영장엔 늘 긴장이 흘렀지만 그래도 인간미가 넘쳤다고 한다. 선배가 무서워 숨죽여 연기하면서도 촬영 후 선배가 사주는 소주 한 잔에 밤새워 인생과 영화를 이야기할 만큼 끈끈함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전체 회식이 있지 않은 이상 촬영이 끝나면 다들 스케줄이 바쁘다며 가버린다.

요즘 드라마 촬영장에서 선배 연기자가 후배를 불러다 한 대 쥐어박기라도 하면 다음날 맞은 후배가 드라마에서 빠지겠다며 난리가 난다. 규율 좀 잡아보려던 선배만 드라마에 피해를 끼친 역적(?)으로 몰려 원망을 사게 마련.

청순한 이미지로 인기가 높은 탤런트 A양은 올해 출연했던 드라마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누렸다고 한다. 촬영장에 지각하는 건 예사고 모든 스케줄을 자기 위주로 짜서 다른 연기자들이 모두 그녀에게 맞춰야 했다. 어쩌다 상대 연기자가 늦기라도 하면 난리가 났다고 한다. 이를 보다 못한 선배 남자 연기자가 그녀를 불러 심하게 야단쳤지만 그녀는 듣는 둥 마는 둥 혼자 콧노래를 불렀다는 후문이다. 인기 탤런트인 그녀가 드라마에서 빠지겠다고 할까봐 아무도 그녀를 건드리지 못했다.

최근 대박을 터뜨린 한국 영화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건달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들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우리 관객들이 건달에 열광하게 됐는지는 몰라도 ‘넘버3’ ‘약속’ ‘초록 물고기’ ‘친구’ ‘신라의 달밤’ ‘조폭마누라’로 이어진 흥행 돌풍은 ‘달마야 놀자’를 거쳐 ‘두사부일체’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평소에 예의바르기 그지없는 장동건이나 신하균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오고 최민식이나 송강호는 실제 건달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리얼한 연기를 펼친다. 발전된 촬영 기술은 신은경의 액션마저도 홍콩 배우들과 다를바 없게 만들어 놓았으니 관객들에게는 더 없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모든 남자들의 잠재 의식속에 내재된 영웅심리를 자극하는 이런 액션물은 남성 관객들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여성관객들에겐 눈물을 안겨준다. 화려한 액션 연기를 보여주던 멋진 주인공은 마지막에 대부분 비참하게 죽기 때문이다.

코미디에서 바보와 깡패만큼 좋은 소재는 없다. 하지만 아무리 몸에 좋은 약도 지나치면 병이 되는 법. 건달을 소재로 한 한국영화 릴레이가 너무 길어져 자치 한국영화에 대한 식상함으로 관객들이 등을 돌릴까 걱정이 돼서 하는 소리다.

김영찬<시나리오작가>nkjak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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