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조의 풀코스 인터뷰]여자국제축구심판 임은주씨

  • 입력 2001년 5월 28일 18시 39분


한국 최초의 축구 여자국제심판이라는데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연약한 몸으로 거친 그라운드를 호령할 수 있을까?.

‘그라운드의 여판관’ 임은주씨(35)를 만날 때까지 머릿속에는 이 궁금증으로 가득했다. 만나면 먼저 이것부터 물어보리라 생각하며 28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그녀를 만났다. 하지만 상황은 그게 아니었다. “너무 유명한 분을 만나게 돼 너무너무 기뻐요. 그런데 얼굴이 많이 부었네요. 혹시 어제 술 마셨나요?” “결혼은 왜 아직 안하셨어요?”. 거꾸로 질문공세를 퍼붓는 바람에 한참을 할말을 잃고 말았다. 거친 남자선수들을 상대하는 심판이어서 거침이 없으리라고는 생각했지만….

하얀 셔츠에 흰바지를 입고 긴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아리따운 모습.그녀는 거친 그라운드를 누비는 터프 우먼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었다.

황영조:반갑습니다. 너무 발랄하고 적극적이네요. 저는 아직 결혼 계획이 없어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임은주씨는 저보다 훨씬 나이도 많은데 아직 혼자네요.

임은주:솔직히 시간이 없어요. 결혼은 때가 있다고 생각해요. 때가 되면 짝을 찾겠지요.

황:원래는 필드하키를 했다던데요.

임: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필드하키를 했었죠. 사실은 육상단거리 선수도 했고 배구선수도 했어요.

황:만능스포츠인이었네요.

임:제 자랑은 아니지만 중학교에 올라가자 각 종목에서 저를 스카우트하려고 감독들이 줄을 섰었습니다.

황:축구는 언제부터 시작했나요.

임:축구를 하게 된 동기는 우스워요. 대학을 졸업하고 자격증 20개를 가지고 사회체육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는데 90년 베이징아시아경기대회 여자대표를 뽑는다고 해 응시를 했죠. 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했고 그해 10월엔 북한에도 갈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여자축구가 조금씩 각광을 받으며 눈에 띄었지요.

황:축구심판은 언제부터 했는데요.

임:심판 자격증을 딴 지는 8년 됐죠. 이화여대 대학원에 다니던 94년에 심판자격증을 땄어요. 하지만 국제 심판자격증을 딴 뒤인 97년부터 본격적으로 심판을 봤습니다.

황:그라운드에서 90분이상을 뛰려면 체력소모가 많을텐데요.

임:체력 하나는 자신있습니다. 하루에 5시간씩 훈련을 합니다. 조깅을 1시간 정도하고 4시간은 스포츠센터에서 체력훈련을 하지요. 선배님들이 저와 50m와 200m를 안뛰려고 해요. 내가 이기니까요.

황:그라운드 내에서는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나요. 선수들이 욕도 한다고 하는데요.

임:전 한번도 욕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제가 아마 때 지켜보던 선수들이 지금 프로에서 뛰고 있어요. 처음 국가대표 심판을 볼 때인 97년 대표팀 막내가 노정윤선수였는데 그때 뛰던 선수중에서 지금 코치나 감독으로 있는 경우도 있어요. 저하고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어요. 별 문제 없습니다. 저는 경기가 거칠어지지 않도록 용병과 양팀 주장을 확실히 잡습니다. 용병은 거칠기 때문에 잘 컨트롤하지 않으면 상대선수를 다치게 합니다. 문제는 경기 운영입니다. 저의 경우엔 선수들이 “임선생님 이번엔 아닌데요”하면서 애교스럽게 항의합니다.

황:아시아축구연맹 2000시즌 올해의 심판상을 수상했는데 특별한 비결이라도.

임:선수들이 심판을 싫어하는 이유를 리스트로 작성해 될 수 있으면 그같은 행동을 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선수들이 가장 싫어하는게 인격적 모독입니다. 난 항상 선수들에게 존대말을 합니다. 물론 잘못했을땐 가차없이 옐로카드와 레드카드를 내밀지요.

황:공정한 판정을 위해 심판이 지켜야할 것은 뭔가요.

임:축구 규칙이 공격자를 보호하고 빠른 경기를 유도하는 쪽으로 자주 바뀝니다. 이에 따라가기 위해서 체계적인 체력관리가 필요하죠. 오심을 줄이기 위해선 집중력이 필요한데 체력이 떨어지면 집중력도 떨어집니다. 그리고 유럽이나 남미 등 축구강국에서 벌어지는 경기를 비디오로 분석해 많은 상황에 익숙해야 합니다. 그래야 실전에서 주저함이 없이 휘슬을 불 수 있어요.

황:일부에서 여자이기 때문에 너무 키워주는 것 아니냐는 말도 있던데요.

임:그것은 뭘 모르고 하는 얘기입니다. 한마디로 제가 노력한만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겉만보고 판단합니다. 제가 여기까지 올라오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습니다.

황:심판생활을 후회한 적은 없나요.

임:전 공부를 해서 대학 강단에 서는게 꿈이었습니다. 지난해 시드니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하려고 했는데 주위분들이 2002년 월드컵 때도 심판으로 한국의 위상을 세워야 되는 것 아니냐고 해 지금도 심판을 보고 있습니다. 솔직히 제가 하고 싶은 또다른 일이 있는데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속이 상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황:한해 수입은 얼마나 되나요.

임:프로 전임심판인데 얼마 안되요. 겉으로 보기와는 다릅니다.

황:지난달 여왕기 때는 해설자로 데뷔했죠. 해설자가 더 어울린다는 사람도 있는데요. 혹시 해설자로 전업할 계획은 없습니까.

임: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친구와 축구경기장에서 이야기하듯 해설하니 편하더라구요. 내가 뛰고 있는 프로경기에서 해설하는 것도 재미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황:앞으로 계획은요.

임:2002월드컵이 끝난 뒤에는 은퇴할 겁니다. 그리고 스포츠마케팅을 공부해 대학강단에 서고 싶습니다. 지금도 한 회사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데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임은주 심판은?

*생년월일: 1966년 3월13일

*체격:1m72, 63㎏

*출신교:강남초-세화여중-인천체고-청주사대-이화여대대학원

*A매치 심판데뷔:97년 10월 동남아시아경기대회

*A매치 심판 횟수:28회

*경력 및 수상:주니어여자하키대표, 여자국가대표(90년), 이화여대코치(92년)·감독(93년) 한국축구 올해의 심판상(99년), 2000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심판상

<정리〓양종구기자>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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