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실제로 이런 단순한 인과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 최근 들어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표준화’ 아성은 위협받고 있고 이들의 신제품은 기대했던 것만큼 시장의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기술혁신은 복잡한 시장과 기술의 상호작용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슘페터의 지적처럼 기술혁신이 창조적 파괴, 즉 무질서를 동반한다면 경제현상을 단순한 질서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기존 경제학은 복잡한 경제현상을 단순화시켜 설명하는 데 익숙하다. 여기에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합리적이고, 합리적인 개인이라면 누구나 시장과 정보가 주어진 상황에서 최적의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런 개인들로 구성된 세계라면 아무리 복잡한 경제질서라 해도 단순한 인과관계나 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다. 모든 개인이 최적의 선택을 하는 경우만을 고려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이론으로는 위와 같이 복잡한 경제현상을 설명하기 어렵다.
물론 모든 이론은 추상화되기 마련이므로 이론과 현실의 차이는 필연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아버지의 완고함이 자식을 더욱 망칠 수 있듯이, 때로는 지나치게 단순한 설명방식이 단순화된 이론과 복잡한 현실 사이의 차이를 더욱 넓힐 수 있다. 복잡계 경제학은 바로 이런 문제를 극복하려는 시도의 산물이다.
자연과학의 ‘복잡성(complexity)’ 이론을 수용한 복잡계 경제학은 경제현상에서 질서와 무질서, 균형과 불균형, 원인과 결과, 관찰자와 관찰대상처럼 서로 이질적인 것들이 분리되지 않고 서로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강조한다. 복잡한 경제현상을 관통하는 단순한 질서나 인과관계가 존재한다고 해도 이를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기술혁신이나 시장질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할 수도 있고 주어진 정보를 인간이 다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을 감안한다면 경제적 행위의 주체가 주어진 조건하에서 최적의 선택을 한다는 기존 경제학의 전제도 의심받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기존 경제학은 과학적 객관성이란 명목으로 관찰자는 주관성을 배제한 상태에서 관찰대상을 바라본다고 가정해 왔다. 그러나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을 감안한다면 가치중립적 이론이란 불가능하다. 더구나 경제이론도 물질만능적 가치관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인정한다면 좀더 적극적으로 관찰자와 관찰대상, 윤리와 과학의 통합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할지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가치중립적 경제학보다 경제학의 윤리적 책임을 묻는, 윤리적 경제학이나 규범적 경제학이 더 타당할 수도 있다.
아직까지 복잡계 경제학은 학계 내부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지도, 경제영역 전반을 아우르는 일관된 체계를 갖추지도 못하고 있다. W 브라이언 아서처럼 ‘기술혁신의 복잡성’을 강조하거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하이에크, 밀란 젤레니처럼 ‘시장질서의 복잡성’을 강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장-피에르 뒤피처럼 ‘윤리적 경제학’을 모색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이 이론은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이 이론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 쉽게 예상하긴 힘들지만, 분명한 것은 적어도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적 단순화의 위험을 피하고 복잡한 경제현상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상호(덕성여대 강사·경제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