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론]「인사 청문회」 필요하다

  • 입력 1996년 11월 6일 20시 41분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차관보급이상 고위직 인사결정에 상원의 「조언과 동의」를 거쳐야 한다. 헌법상 행정권은 대통령 개인에게 있는데 그를 위해 일할 각료 등의 임명에는 상원이 간여한다. 우리나라의 총리나 대법원장 임명처럼 「인사문제이니까」 토론없이 무기명으로 동의해주는, 그런 요식행위가 아니라 상원의 해당위원회에서 청문회를 열어 철저한 검증을 거친다. 81년 레이건대통령이 취임했을 때 국무부의 인권담당 차관보로 어니스트 레피버를 내정했으나 그가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우파독재에 동정적이고 우방의 인권문제에 매우 소극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상원은 레이건의 공화당이 지배하고 있었으나 「조언과 동의」를 거부할 기세였다. 결국 레이건은 레피버에 대한 임명안을 스스로철회했다. 89년부시대통령은존 파워를국방장관으로임명하려했으나 국방장관에 적절치 않은 전력이 드러나 「조언과 동의」를 얻지 못했다. 상원의 비준은 대개의 경우 별 문제가 없다. 문제가 될 경력을 가진 사람은 아예 지명되지 않고 자신이 없으면 본인 스스로 자리를 탐내지 않는 까닭이다. 특히 어떤 중요정책에 대한 견해가 이유 없이 달라졌다든가, 여(與)이었다 야(野)가 되고 야이었다 여가 되는 등 걸어온 역정이 석연치 않은 사람은 「적임자」로 인정될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연방수사국의 소상한 경력조사기록이 검토되고 재산의 신고내용과 형성과정이 검증된다. 미국에서 감투쓰기란 쉽지 않다. 국민의 심판을 거쳐 정치인에 선출되든가, 임명직의 경우 능력이 부족하고 자격이 없거나 때묻은 사람은 아예 탐낼 수 없는 제도적 장치가 정말 부럽다. 그대신 일단 어떤 자리에 앉으면 오래 근무함으로써 능력을 한껏 발휘할 수 있다. 각료의 경우 대부분 대통령의 임기동안 재임한다. 레이건 8년 재임시 대부분의 기간에 조지 슐츠가 국무장관이었고 캐스퍼 와인버거가 국방장관이었다. 부시대통령 4년간 대부분의 기간에 제임스 베이커가 국무장관이었고 리처드 체니가 국방장관이었으며, 클린턴대통령 재임 4년간 줄곧 워런 크리스토퍼가 국무장관이요, 지난 3년간 윌리엄 페리가 국방장관이었다. 다시 말해 일단 주요각료가 되면 대통령과 정치생명을 같이하는 것이다. 인격 경력 능력 식견 등에 대한 완벽한 검증을 거쳤기 때문이다. 「인사가 만사」란 결코 빈 말이 아니다. 이렇듯 신중을 기하고 일단 「합격」하면 마음놓고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 우리의 경우 1년이 멀다하고 총리와 각료들이 경질되는데, 거기에는 임명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얼마전 그만두고 지금은 사법처리 과정에 있는 李養鎬전국방장관의 경우는 무엇을 시사하는가. 盧泰愚전대통령 딸에게 뇌물을 주어 공군참모총장 진급운동을 벌였고 1억5천만원의 뇌물수수가 폭로되자 운전병을 시켜 알리바이를 성립시키려 했던 사람이 4년간이나 공군참모총장 합참의장 그리고 국방장관을 잇따라 지냈으니,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인가. 李養鎬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孔魯明외무장관이 돌연 그만두었다. 6.25때 인민군에 복무한 사실이 드러났다는 이야기다. 우수한 외무공무원으로 우리군에서 5년간이나 복무한 전력이 있는데 6.25때 일을 새삼스레 거론하는 것이 과연 온당하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러한 전력이 장관 임명과정에서 충분히 검토되고 공과를 따진후 기용되었던들 아무 일이 없었을 것이다. 기왕 대통령제를 운용하려면 미국식 청문회제도를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 미국식을 모방한 필리핀같은 나라에서도 상원의장을 위원장으로 하고 상하 양원 25명으로 된 인사위원회가 고위급 인사에 대한 청문회를 열어 비준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인사가 만사다. 거기에 알맞은 제도와 절차가 따라야겠다. 朴 權 相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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