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부모는 자연스레 보여줬고 자식은 서서히 닮아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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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人의 현재를 있게 해준 부모-스승의 특별한 가르침

1987년경 어느 날, 석사 1학기 조민행 대학원생(47·현 고려대 화학과 교수)이 아이디어를 들고 지도교수를 찾았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서정헌 교수(64·서울대 화학부 교수)가 말했다. “연구에 들어가면 박사과정 학생 서너 명은 너끈히 졸업시킬 정도로 좋은 아이디어야.”

사실 석사과정에 막 들어온 제자의 아이디어가 그리 대단했을까 싶다. 그러나 스승은 잘하려고 노력하는 제자가 더 거리낌 없이 연구에 매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서 교수는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칭찬을 그냥 하지는 않는다. 잘하면 잘한다고 말해줘서 그 친구들이 잘한다는 걸 스스로 알게 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에게는 각자의 소질과 능력을 계발하는 데 영향을 미친 은사와 부모님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 스승과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뭔가가 있었다.

○ ‘저렇게 하고 싶다’

강석진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51)의 어머니 정양완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83)는 지난해 조선 말기 실학의 한 맥이었던 ‘강화학파’에 대한 책을 냈다. 강 교수가 어머니에게 축하한다고 하자 정 전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이 언젠가는 누구한테 도움이 되겠지. 도움이 안 되면 또 어떠냐. 내가 좋은데.” 강 교수는 이 같은 어머니의 자세를 두고 “순수학문 하는 사람의 귀감이 된다”고 했다. 세속의 욕심과 동떨어져 학문세계에 몰입해 공부하는 것을 제일로 치는 태도 말이다.

손훈 KAIST 건설환경공학과 교수(43)의 머릿속에는 아버지 손일근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80)이 퇴근한 뒤에도 항상 책상이나 식탁에 앉아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하는 모습이 남아 있다.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며 밤늦게까지 앉아 기사를 쓰는 모습도 선하다. 아버지와 그를 이어주던 매개체가 책이었기에 어릴 때부터 손 교수는 책을 가까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요즘도 부모님 댁에 가면 책상이나 식탁에 앉아서 책이나 신문을 보다 졸고 계시는 아버지를 볼 때가 많다”고 말했다.

강 교수나 손 교수의 부모는 한 번도 그들에게 “공부하라”는 말씀을 하지 않았다고 두 사람은 기억한다. 부모는 지시 대신 스스로 보여줬고 자식은 ‘저렇게 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자랐다.

○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해


배애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의약연구단장(50)은 대학 시절 약학을 전공하고 싶었다. 덕성여대 자연계열에 장학금을 받으며 입학했지만 무슨 이유인지 1학년 내내 성적은 바닥이었다. 이 때문에 과를 결정하는 2학년 때 약학과를 가지 못하고 화학과를 가게 됐다. 그런 그에게 공부의 열정을 불러일으킨 사람이 화학과에 막 부임한 고은희 교수(62)였다. 직전 해에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30대 초반의 고 교수는 열정적이면서도 재미있게 유기화학을 가르쳤다. 배 단장은 “언니 같았다고 해야 할까…. 냉철하면서도 늘 저에게 뭐든지 잘한다고 칭찬해 주셨다”고 말했다. 그렇게 힘을 얻은 배 교수에게 고 교수는 멘토 역할을 하면서 그를 화학의 길로 인도했다.

조민행 교수의 ‘설익은’ 아이디어를 칭찬해준 서정헌 교수는 그렇다고 칭찬에 후한 스승만은 아니었다. 서 교수는 “창의력이 있는 제자는 그 능력을 잘 활용하도록 방향을 잡아주고 격려를 해주면 된다”고 말했다. 제자를 일일이 붙들고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동기를 부여해서 자기 혼자 일을 잘 처리하도록 가르치고 도와주는 것이 교수가 할 일이지요.” 서 교수의 교육관이다.

○ 격의 없는 태도, 그리고 믿음


뮤지컬 연출가 장유정 씨(36)가 연극과 여행에 미쳐 살던 대학 졸업반 때였다. 공단의 사택 단지에 살던 그는 인도 여행을 가겠다고 머리를 군인처럼 짧게 잘랐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저녁 늦게 모자를 쓰고 현관을 빠져나가는데 그만 공터에 모여 있는 이웃 어른들과 맞닥뜨렸다. 인사는 해야 하는데 모자는 벗을 수 없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함께 있던 아버지가 딸을 위기에서 구해주었다. “이제는 말 안 들으면 머리를 빡빡 밀어버린다는 협박도 못하겠네. 허허허.” 장 씨는 “나를 믿고 기다려주신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폭우에 무너져 마당으로 쏟아져 내린 토사 더미를 치우게 했던, 강석진 교수의 아버지 강신항 성균관대 명예교수(82)도 아들에게 한없이 엄한 것만은 아니었다. 중학교 시절 아들 강 교수는 축구를 비롯한 스포츠와 고우영의 연재만화 ‘일지매’에 빠져 매일 부모님 몰래 스포츠지를 사 봤다. 어느 날 가방 속에 숨겨놓은 신문을 아버지에게 들키고 말았다. “이런 시시한 내용만 있는 걸 왜 사 보느냐. 이 만화는 또 어떻고” 하며 역정을 내던 아버지가 ‘일지매’를 읽어보더니 말했다. “우리 이거 매일 보자.”

손 교수는 중고교 시절 아버지 손 전 논설위원과 말 그대로 밤새도록 논쟁을 벌인 경험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어리다고 무시하거나 얕보려는 생각이 추호도 없었던 것이다.

이들 스승과 부모는 자신이 어른이라고, 선생이라고 억지로 설득하거나 특정 분야 전문가라고 재는 법이 없었다. 그 태도가 ‘100인’을 키웠다.

특별취재팀  
#한국을 빛낼 100인#가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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