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기업 불안하니 민생 더 걱정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30일 2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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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와 民生 흔드는 기업 위기… 아이부터 노인까지 全世代에 파장
‘재벌’ 대부분, 세계 중견기업도 못돼… 5대 그룹 빼면 글로벌 경쟁 어려워…
그런데도 “너무 커서 규제한다”니…
정치인도, 정부도 “문제는 안다”면서 기업 둘러싼 편견 걷어내지 못해

배인준 주필
배인준 주필
대기업들이 신입사원을 덜 뽑기로 했다는 뉴스에 졸업을 앞둔 학생들도, 취업 다수생(多修生)들도, 그 부모들도 가슴이 철렁한다. 힘든 것은 취직만이 아니다. 세대에 따라 결혼할 결심을 하고 새 가정을 꾸리는 일, 아들딸 낳고 안전하게 기르는 일, 앞만 보고 달려오다 은퇴 앞에 서는 일, 길어진 황혼을 노부부끼리 또는 혼자 맞는 일이 다 어깨를 짓누른다. 갓 태어난 아이부터 청소년의 장래 100년은 불안의 그림자가 더 길다.

복지를 통해 성장을 촉진한다는 주장은 역시 공허하다. 일자리가 최대의 복지이자 최선의 분배인 것은 맞다. 하지만 세금으로 일자리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한다는 발상은 근본 해법이 될 수 없음이 이미 입증됐다. 기업과 시장의 역할을 정부가 대신하기 위해 국가 지출을 늘리고, 거기에 맞춰 세금을 짜내, 재정 건전성을 지킨다는 것은 몽상에 가깝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이란 책에서 소득 불평등에 대한 과격한 부자세(富者稅) 처방을 제시해 관심을 끌었지만 그가 한국 대통령이 된다 해도, 자본주의를 포기해 북한처럼 되지 않으려면, 기업을 살려야 답이 나온다. 기업을 더 강하게 하는 것, 강한 기업이 더 많이 생겨나게 하는 것, 글로벌 경쟁에서 우리 기업들을 오래 살아남게 하는 것, 우리기업이건 외국기업이건 한국에 더 많이 투자하고 싶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 이것 말고는 성장과 발전을 지속하고 그 속에서 국민 복리(福利)를 키울 수 있는 왕도가 없다. 불행하게도 한국은 정치(政治)가 기업을 희생양으로 삼기를 즐기며, 사회적으로도 기업 역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지금 국내 기업들은 제조업 서비스업 할 것 없이 대부분 생존의 위기를 느끼는 상황이다. 2011년 이후 상장기업 이익이 계속 줄었고 올해는 급감 양상이다. 그나마도 5대 그룹 빼고는 적자 기업이 많다. 우리 기업들의 장래를 어둡게 하는 구조적 위험성은 더 심각하다. 30대 재벌 운운하지만 5대 그룹, 많이 봐야 10대 그룹 정도를 제외하면 해외에 나가서 성공하기 어려운 경쟁력과 규모를 갖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중견기업 축에도 끼기 어려운 그룹이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이들을 싸잡아 재벌이라 부르면서 ‘크고 강하니까 규제해야 한다’는 미신이 끈질기다.

국내 정보기술(IT)기업의 시가총액은 삼성전자까지 합쳐도 320조 원으로 중국 알리바바 하나(240조 원)보다 조금 많고 중국 전체 IT기업(1000조 원)의 3분의 1도 안 된다. 온 국민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경제 회생, 일자리 창출’을 외친다고 해도 기업인들의 야성(野性)이 살아나지 않으면 공허한 외침에 그칠 것이다. 기업인들에게 도전적인 ‘기업가 정신’의 회복을 주문할 수는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기업하기 힘들고, 해봐야 고생하는 만큼 못 번다’는 생각까지 못하게 할 수는 없다. 기업인들더러 탐욕스럽다고 손가락질하며 착해지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기업인들의 야성을 죽일 뿐이다. 기업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집착하는 점에서 정치인들이나 다른 분야 종사자들보다 정말 더 심한지도 의문이지만, 기업인들이 이익에 욕심을 내는 것은 실은 고마운 일이다. 이들이 욕심을 잃으면 산업과 시장과 경제가 금세 쇠퇴하고 일자리는 더 사라질 것이다.

기업집단의 내부거래에 대한 규제도, 그 결과로 국내 중소기업이 덕을 보는 것이 아니라 품질 및 가격 경쟁력이 있는 외국기업들이 덕을 보는 사례가 많다. 알리바바에서 사갖고 오니 중국이 덕을 보는 것이다. 중소중견기업 지원도 궁극적인 경쟁력 강화를 지원해야 한다. 그게 불가능하면 오히려 쉽게 도태되도록 해야 한국기업 생태계 전체가 강해질 수 있다. 정치권과 일부 교수들이 동반성장이니 경제민주화니 하면서 책임지지 못할 규제만 잔뜩 만들게 했더니 경제와 민생에 어떤 결과가 나타났는지 한번쯤 돌아보고 반성할 일이다(그런데 이에 대한 잘못을 고백하는 사람은 없다).

명백하게 회사 돈을 빼먹은 것이 아닌데도 걸핏하면 경영의사결정을 배임(背任)으로 몰아 사법처리하려 들고, 대기업이 하는 일이면 다 갑(甲)질이라고 지탄하면 그런 환경에서 투자 손실의 리스크까지 감수하는 기업 야성이 살아날 수 없다. 기업 활동을 범죄시하면서 경제가 성장하고 일자리와 세금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현실감 없는 비이성적 생각이다. 정치인들도, 사회 식자들도, 정부도 “문제는 안다”고 하면서 기업을 둘러싼 미신을 걷어내려는 노력은 제대로 안 한다.

배인준 주필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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