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돌면 문닫을 판”… 기업들 루머 막느라 헛돈 지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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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세상을 바꿉니다]<3부>키보드 위의 언어폭력
기업-정부 뒤흔드는 SNS 루머

‘언제 어떻게 악성 바이러스가 퍼질지 모르는 위험한 미세 혈관.’

재계 10대 그룹 계열사에서 홍보 업무를 담당하는 김모 씨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렇게 표현했다. 김 씨는 “‘발 없는 소문이 천 리를 간다’는 속담이 요즘처럼 실감나게 느껴졌던 때도 없다”며 “문제는 SNS에 올라오는 정보 중 사실이 아닌 게 너무 많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SNS에 올라온 말 때문에 개인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니다. 근거 없는 악성 ‘루머’들은 기업이나 기관의 명예에 치명상을 입히거나 경제적인 피해를 준다. 기업의 기획이나 홍보 부서는 SNS에 올라오는 회사와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소문을 파악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 악성 루머에 떠는 기업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2011년은 국내 식품·소비재업계에서는 최악의 ‘악성 루머 시즌’으로 꼽힌다. 상당수 기업이 누군가가 유포한 SNS발 괴담으로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LG생활건강은 이 회사가 만드는 생리대인 ‘바디피트’에 사용되는 흡수제가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 근처에서 생산돼 방사능에 노출됐을 수 있다는 괴담에 시달렸다. 괴담은 ‘LG생활건강이 일본의 유니참과 합작회사로 설립한 LG유니참의 현지 생산 공장이 후쿠시마에 있다. 생리대를 통해 방사능에 노출되면 바깥 피부로 노출되는 것보다 위험하다’는 식으로 아주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그러나 바디피트의 흡수제 생산 공장은 후쿠시마에서 650km 이상 떨어진 곳에 있고 나머지 제품의 원료는 모두 국내에서 생산되고 있었다. 사실상 방사능과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매출 감소로 이어졌다.

스타벅스와 파리바게뜨도 ‘후쿠시마 방사능 괴담’에 시달렸다. 스타벅스는 방사능에 오염된 일본산 녹차 잎을, 파리바게뜨는 세슘이 발견된 일본산 밀가루를 사용한다는 악성 루머가 SNS상에 떠돌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동일본 대지진 뒤 터져 나온 ‘방사능 괴담’들은 지금까지도 식품과 소비재 기업들 사이에서는 이야기를 꺼내는 게 금기시될 정도로 충격과 피해가 컸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정부 내 최대 ‘SNS 피해 부처’ 중 하나로 꼽힌다. 올해 들어서도 국방부는 ‘닭, 오리, 달걀을 먹어도 조류인플루엔자(AI)에 걸릴 수 있다’는 내용과 함께 ‘AI가 발생한 뒤 군대 식단에는 닭만 나온다’는 루머가 확산돼 고초를 겪었다. 루머가 퍼지자 국방부는 군 급식은 AI와 상관없다는 해명 자료를 내고 대응에 나섰다.

2010년에는 ‘천안함 사태’와 관련된 SNS의 악성 루머와 전쟁을 치른 바 있다. 당시 SNS를 중심으로 온라인에서는 ‘미군 잠수함이 훈련 도중 천안함을 실수로 공격했다’ ‘천안함은 암초에 부딪혀 좌초됐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고 퍼져 나갔다. 이 루머들은 천안함 침몰이 북한의 공격에 따른 것이었다는 국제적 차원의 공식 조사결과가 발표된 이후에도 이어졌다.

○ 적극적으로 대응 나서는 기업


일부 기업은 악성 루머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기도 한다. 삼성그룹이 대표적이다.

2012년 2월 정부가 바지락 채취 같은 ‘맨손 어업’에 대기업도 진출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히자 우석훈 성공회대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어촌 민영화의 시작이 삼성중공업이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또 인터넷 팟캐스트 ‘나는 꼽사리다’에선 “갯벌 민영화를 삼성중공업이 추진했다”고 주장했다.

‘삼성이 어업까지 장악하려 한다’는 루머가 퍼지자 삼성중공업은 우 교수의 트위터에 ‘정확한 근거를 제시해 달라’는 내용의 해명 요청 글을 여러 차례 남겼다.

결국 우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서 “(‘나는 꼽사리다’를) 다시 들어봤는데 삼성중공업이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어야 할 부분을 ‘추진’으로 잘못 말했군요”라고 정정했다.

삼성 관계자는 “인터넷상에서 발생하는 괴담에 일일이 반응하는 게 번거롭지만 최근에는 워낙 SNS를 통해 빠르게 유통되고 ‘진실’로 둔갑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며 “악성 루머의 전파 속도가 빠르다고 판단되면 SNS를 통해서도 적극 대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경찰이 나서서 악성 괴담 막는다

2011년 11월 신설된 경찰청 온라인소통계는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등 주요 SNS의 ‘경찰청 온라인소통’ 계정을 통해 SNS에 루머로 의심되는 내용이 있으면 사실인지 확인한 뒤 시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실제처럼 지어낸 흉흉한 이야기를 방치하면 사회적 불안감이 형성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재 온라인소통계에서 운영하는 SNS 계정에 등록된 친구는 총 90만 명에 이른다.

지난해 6월 이모 씨(23)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건국대 인근 주점에서 합석한 여성들과 모텔에서 술을 마시다 남자 2명에게 폭행을 당했다. 다행히 경찰이 출동했고, 경찰 조사 과정에서 알아보니 여성 조선족이 이런 식으로 사람의 장기를 꺼내 판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은 당시 8만 명 이상이 ‘좋아요’를 눌러 추천했고 3000여 명이 글을 퍼 날라 ‘건국대 장기매매 사건’이란 악성 루머로 발전했다.

경찰은 해당 경찰서를 통해 자세한 상황을 파악한 뒤 반나절 만에 ‘사실이 아니다’는 해명 글을 페이스북 계정에 올렸다. 이후 이 씨는 폭행당한 흔적이라며 자신의 팔을 찍은 사진을 올리기도 했지만 곧 관련 글을 모두 삭제했다. 사실이 아니었던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실제 지명을 쓰고 자신의 목격담이나 경험담인 것처럼 지어내는 괴담이 많아지고 있다”며 “이런 괴담들은 ‘사실’처럼 보여 확산 속도가 빠르고 사회적으로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언어폭력#SNS 루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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