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 기고/강성모]노벨상은 SCI 실적순이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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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이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을 놓고 어떤 학문이 상대적으로 중요한지 논쟁을 벌이곤 한다. 사람들은 넓이보다 깊이를 존중하고, 연관성보다는 학문적인 순수성을 더 숭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응용과학을 마땅히 받아야 할 대접보다 덜 선호하는 편이다.

대학에서 응용수학과는 자연과학대가 아니라 공대에 소속된 경우가 많다. 또 통계 관련 교과목은 기초과학 범주에 포함되기에는 순수하지 않다고 간주하곤 한다. 컴퓨터과학은 엄밀한 과학으로 여기지만 초기만 하더라도 많은 저명한 과학자는 컴퓨터가 과학이라면 세탁기 과학도 존재하는 게 정당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공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나는 기초과학보다는 응용과학에 기울어진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나의 학문은 기초과학의 토대 위에서 구축됐다. 나는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에 동등한 가치를 둔다. 두 분야는 똑같이 엄격한 잣대에 따라 재원을 적절히 지원받아야 한다. 두 학문 모두 연속성이 필요하다. 실제 세상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확실한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을 모두 깊이 탐구할 필요가 있다.

기초과학은 응용을 고려하지 않고 호기심에 이끌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내가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때의 일이다. 멤리스터 소자(memristor·메모리와 레지스터의 합성어로 전류의 방향이나 양 같은 기존 경험을 모두 기억하는 특별한 소자) 연구가 일자리를 잡는 데 도움이 될지 물었다. 교수는 “문제는 주제가 아니라 연구의 질”이라고 답했다. 30년이 지난 2008년에 HP의 과학자들은 네이처에 ‘잃어버린 멤리스터의 발견’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화학자들이 공학자와의 연구와 자신들의 연구를 이어 붙인 결과였다. 뉴욕타임스는 하이닉스가 이 기술을 이용해 새로운 종류의 메모리를 개발할 것이라고 8월에 보도했다.

노벨상 역시 마찬가지다. 노벨상은 기초과학과 응용과학 둘 중 하나를 강조하는 기준이 되면 안 된다. 최근 수상자를 봐도 어떤 과학을 전공했는지보다는 과학적 발견의 영향력 정도에 따른 기여를 평가받는 추세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러시아 과학자 안드레 가임 교수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박사는 강하고 전기전도성이 뛰어난 탄소 구조(그래핀)를 실험적으로 증명했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인 네기시 에이이치 교수, 스즈키 아키라 교수, 리처드 헤크 교수는 팔라듐 촉매를 이용해 탄소-탄소 교차 결합을 개발해 복잡한 화합물을 손쉽게 합성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은 첫 번째 노벨상 수상자를 기다린다. 나 역시 한국이 합당한 몫을 갖게 되리라는 점을 의심하지 않는다. 기회를 촉진하기 위한 방법은 촉망받는 과학자 및 공학자가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과 같은 통상적인 잣대에 따라 압력을 받지 않고, 자신이 진짜 가치 있게 생각하는 분야를 추구하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노벨상 수상자의 SCI 실적을 따져보자. 수년 전 나는 일리노이대로 초청을 받은 독일인 노벨상 수상자를 만났다. 그가 노벨상을 받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논문은 학술지에 게재를 거부당했다. 하지만 그의 고집이 결국 승리했다. 그는 지향점을 잘 알고 있었고 확신했었다.

한국도 우수한 과학자나 공학자가 세계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믿는 일을 좇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SCI 점수가 높지 않을 수 있겠지만 이는 많은 노벨상 수상자도 마찬가지였다. SCI와 같은 종류의 인정은 목표가 아닌 부산물이 되어야 한다. 물론 실력이 뒷받침돼야겠지만 한국 과학자와 공학자의 탁월함을 믿어줄 필요가 있다.

강성모 미국 머시드 캘리포니아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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