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테마株’는 개미들 쪽박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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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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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보궐선거 바람을 타고 증시에 형성된 정치인 테마주는 거대한 도박판이나 다름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안철수, 박원순, 나경원 테마주가 형성된 9월 이후 거래량이 많게는 발행 주식의 10배를 웃돌 정도로 거래가 집중됐다. 어떤 종목은 전체 유통주식의 주인이 20번 가까이 바뀌는 기현상도 발생했다.

서울시장 선거전이 달아오른 9월 1일 이후 주요 정치인 테마주의 거래명세를 분석한 결과 거래의 99.1%가 개인투자자에 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증권업계는 시중의 풍부한 자금과 일부 작전세력, 개인들의 ‘폭탄 돌리기’ 등이 맞물려 ‘테마주 도박 열풍’이 분 것으로 분석했다.

○ 안철수연구소, 주인 10번 바뀌어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설이 알려진 9월 1일 이후 안철수연구소는 개인들의 투기대상으로 떠올랐다. 이 종목의 9월 1일 이후 이달 26일까지 회전율은 1062.11%로 치솟았다. 회전율은 상장주식 수 대비 거래량 비율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손바뀜이 많다는 것을 뜻한다. 즉 회전율이 1000%라면 특정 기간 해당 주식 전체의 주인이 10번 이상 바뀔 정도로 매매가 집중됐다는 얘기다. 대주주 지분 등을 제외하고 실제 거래 주식은 발행 주식의 50% 남짓인 점을 감안하면 9월 이후 총 거래량은 유통주식의 20배를 웃돈다.

대표이사가 나경원 후보의 서울대 법대 동기라는 이유로 나경원 테마주로 꼽히는 통신장비업체 한창은 이달 6일부터 25일까지 14거래일 연속으로 회전율 10위권을 유지했다. 선거운동 마지막 날인 25일 한창의 회전율은 59.8%로 1위였다. 회장이 박원순 후보와 고교 동창이어서 박원순 테마주로 분류되는 광고대행사 휘닉스컴도 14일부터 8거래일 연속 회전율 10위 안에 속했다. 18일에는 31.9%로 전체 1위를 차지했다.

이 정치인 테마주들을 사고판 주체는 개인투자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9월 1일 이후 거래량 가운데 개인투자자 거래의 비중은 휘닉스컴이 99.5%에 이르렀다. 같은 기간 한창과 안철수연구소의 거래량 가운데 개인투자자의 비중은 각각 98.9%로 나타났다.

선거 당일까지 이 테마주들의 주가는 9월 초 대비 큰 폭으로 오른 수준을 유지했다. 26일 휘닉스컴은 9월 1일 종가 대비 173.9% 오른 3685원에 마감됐다. 안철수연구소는 이틀 연속 급락했지만 9월 1일 대비 108.9% 오른 7만2400원에 거래를 마쳤다.

○ 투기판, 재연 우려

정치인 테마주 바람이 분 것은 증시 대기자금은 풍부한데 해외 불안요인 탓에 딱히 투자처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는 작은 테마도 투기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투자자의 예탁금이 8월 10일 사상 최고치인 22조7000억 원을 나타낸 후 현재까지 18조∼20조 원 선을 유지하고 있다. 언제든 투자에 나설 자금이 풍부하다는 얘기다. 반면에 증시 환경은 여전히 불안하다.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경기침체 등은 언제든 한국 증시를 공포로 몰아갈 수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투자처를 찾지 못한 엄청난 자금이 작은 희망에도 정치인 테마주와 같은 거품을 만들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이런 ‘묻지 마 투자’는 대형 손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떤 후보가 당선되든 과도하게 오른 주가는 결국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그동안 충분히 입증됐다. 김세중 신영증권 투자전략팀장은 “테마주의 끝은 좋을 수가 없다”며 “일반투자자가 도박성 거래에 뛰어들었다간 엄청난 손실을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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