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작가 림일이 쓰는 김정일 이야기<10·끝> 대역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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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뒤에도 계속되는 대역說… “최소 3명” 추측도

필자가 평양에 있을 때 일부 주민들 사이에 “얼마나 신통했으면 장군님 영화 배역을 준비하는 사람이 어느 날 창광원(최고급 대중목욕탕)에 나왔는데 인민들이 경애하는 장군님인 줄 알고 ‘만세!’를 목청껏 외쳤다”는 풍문이 돌았다. 오래전부터 북한에서 김정일 영화를 준비하려 했으나 “아직은 때가 아니다”는 그의 만류로 중단됐다. 이제는 역사인물이 됐으니 앞으로 나올 것으로 전망한다. 체제 유지에 도움이 되기에 반드시 그럴 것이다.

북한의 김정일 사망 발표 3일 뒤 인터넷에는 ‘죽은 김정일은 대역배우였고 진짜 김정일은 두 달 전에 죽었다. 그의 활동을 보도하는 전담 아나운서인 인민방송원 이춘희가 50일간 잠적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황당한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생존은 물론이고 사후에도 계속되는 김정일 대역설이다. 그만큼 그는 희대의 악인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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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북한전문가인 시게무라 도시미쓰 와세다대 교수는 예전부터 “지금의 김정일은 대역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과 2002년 북-일 정상회담 때의 김정일 목소리는 동일하고 2004년 북-일 정상회담 때의 목소리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남한이 대북 첩보 수집에서 의존하는 미국 중앙정보국(CIA)도 오래전부터 “진짜든 가짜든 대역을 포함해 김정일은 최소 3명 이상”이라고 했다. 물론 가설이고 추측이다. 폐쇄적인 북한체제 특성상 그것을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2008년 여름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뇌중풍 이후 북한에서 주기적으로 내보낸 여러 장의 그의 사진은 대역설을 충분히 부추기고도 남았다. 늦가을인데도 한여름에나 볼 법한 초록이 우거진 배경 사진, 예전과 동일한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과 찍은 사진, 매우 건강한 모습의 사진 등 하루 이틀 차이로 이런저런 사진이 공개되니 각 분야 전문가들도 혼란스럽기만 했다. 신속과 정확성을 생명으로 삼는 언론사들도 좌왕우왕하며 아니면 말고 식의 추측성 보도를 쏟아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악명 높은 독재자들이 암살을 피하기 위해 대역을 쓴 것은 비밀도 아니다. 아돌프 히틀러에서부터 피델 카스트로와 사담 후세인까지 독재자들에게 시대와 역사를 아울러 붙었던 것이 바로 대역설이다. 일신의 향락과 부귀영화, 절대적인 영구 통치를 위해 잔인무도했던 독재자들이 국민에게 지은 죄가 너무 커 하늘이 무서워 이용했던 것이 바로 대역이다.

김정일은 세계 독재자의 한 명이었다. 그는 20대부터 자신의 관저와 전용극장에서 액션과 첩보영화를 흥미롭게 봤고 무소불위의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무능한 정치가였지만 탁월한 독재자였던 그에게 있어 대역은 어쩌면 신변 안전상 무엇보다 필요한 작업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한 권력에 대역을 못 쓸 것도 없지 않은가. 김정일은 생전에 평양을 방문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의 환담에서 “평소 인민들에게서 돌팔매질을 맞는 꿈을 꾸기도 한다”고 했다. 그래서 대역설은 더더욱 신빙성이 있다.

김일성 김정일의 66년간 철권통치가 막을 내렸다. 아버지 후광에, 그리고 순진하고 바보 같은 인민을 잘 만난 덕에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고 간 김정일이다. 그것도 모자라 인민이 무서워 죽어서도 산 사람만큼 경호를 받으며 하늘이 무서워 호화궁전의 유리관 속에 영면했을까.

‘소설 김정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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