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북한’ ‘중동’… 아무 것도 못하는 유엔안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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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12월 11일 15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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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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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주요 강대국들의 ‘진영 논리’에 갇혀 또다시 마비됐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무력충돌과 관련해 지난 8일(현지시간) 안보리 회의에 상정된 휴전 촉구 결의안이 상임이사국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된 것이다.

이스라엘은 지난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민간인을 포함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즉각 반격에 나섰다. 이에 하마스의 주요 거점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중심으로 인명피해 또한 계속 커지고 있으며, 이 지역 주민들의 인도적 위기 또한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와 관련 아랍권 국가들은 미국 측의 이번 거부권 행사에 대해 “비윤리적이고 비인도적”이라며 일제히 비난하고 나선 상황. 심지어 안보리 결의를 위반해 핵·미사일 개발과 관련 도발을 지속해온 북한마저도 미국을 향해 “유엔 무대에 남아 있을 자격이 없다”(김선경 외무성 국제기구담당 부상)고 공격했다.

반면 미 정부는 아랍에미리트(UAE)가 제출한 이번 휴전 촉구 결의안엔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공격을 규탄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았고, △현 상황에서 ‘휴전’하는 건 하마스에만 유리한 일이란 등의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상황과 관련해 미 정부는 지난달 안보리에 민간인 보호와 인질 석방을 위한 ‘일시적 교전 중단’을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제출했지만, 당시엔 중국·러시아의 반대로 채택되지 못했다. 당시 러시아 또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인도주의적 휴전’을 요구하는 내용 등을 담은 결의안을 안보리에 제출했으나 이에 대해선 미국과 영국이 반대했다.

안보리에서 새 결의가 채택되려면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이 찬성하는 동시에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등 5개 상임이사국(P5) 중 어느 한 곳도 거부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

그러나 작년 이후 안보리에선 국제사회의 총의를 모아 각국의 무력충돌 등 분쟁 상황에 대한 ‘조정’에 나서기보다는 결과적으로 이를 ‘방관’만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미국·중국·러시아 등 주요 상임이사국들 간의 ‘진영 대결’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안보리의 ‘기능 마비’가 확인된 근래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작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때다. 당시 안보리는 ‘러시아의 즉각적인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우크라이나 침공 당사자인 러시아가 상임이사국 지위를 활용해 ‘셀프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불발됐다.

또 안보리는 같은 해 3월 북한이 5년 만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재개하자 대북제제 결의 제2397호에 근거해 그해 5월 추가 제재 결의를 채택하려 했으나, 이때도 북한의 주요 우방국이자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와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그 채택을 막았다.

안보리가 2017년 12월 중국·러시아를 포함한 이사국 만장일치로 채택한 2397호 결의엔 ‘북한이 핵실험이나 ICBM급 미사일을 발사하면 대북 유류 수출을 추가 제한하기 위한 행동을 하기로 결정한다’는 내용의 이른바 ‘트리거’(방아쇠) 조항이 담겨 있다. 그러나 중·러 양국은 이 같은 기존 결의마저 ‘부정’하는 행보를 보였던 것이다.

이와 관련 외교가에선 중·러 양국이 저마다 미국과의 패권경쟁,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에 따른 서방과의 갈등 상황에서 “북한의 도발을 대미(對美)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란 분석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상황과 관련해서도 안보리가 일치된 견해를 내놓지 못하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은 10일 “안보리가 지정학적 분열 때문에 마비됐다”며 거듭 유감을 표시했다.

이에 대해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안보리 자체의 존립을 흔드는 일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 러시아가 먼저 시작한 게 분명하지만, 미국도 이번에 이스라엘과의 특수한 관계를 고려해 그들의 손을 들어줬다”며 “이 때문에 안보리 형해화가 가속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결국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간 충돌이 어떻게 마무리가 되느냐에 따라 안보리의 존립 근거나 기능·역할에 대한 근본적 문제가 제기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각국에선 차제에 “상임이사국의 거부권 제한을 포함한 안보리 개혁 논의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은 이 같은 안보리 개혁을 위한 유엔헌장 개정에 대해서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어 “그 역시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게 관련 전문가들의 중론이기도 하다. 이에 일각에선 아예 “안보리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국제기구 설립이 필요하다”는 견해도 제시되고 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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