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총장 맞는 유엔, ‘분쟁 해결’ 제몫 해낼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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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테흐스 사무총장 시대 개막

 
1일 정식 업무를 시작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해 12월 12일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뉴욕=AP 뉴시스
1일 정식 업무를 시작한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해 12월 12일 취임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뉴욕=AP 뉴시스
“외교관이 가고, 정치인이 왔다.”

 한국인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반기문 전 총장(73·8대)과 그 후임인 안토니우 구테흐스 총장(68·9대)의 특징을 유엔 내부에선 이렇게 표현한다. 직업외교관 출신인 반 총장은 유엔 수장 10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대권 도전에 나선 반면, 구테흐스 총장은 의원내각제 국가인 포르투갈의 총리(1995∼2002년)와 유엔난민기구(UNHCR) 최고대표(2005∼2015년) 경력을 토대로 유엔을 이끌게 됐다. 두 사람의 경로가 정반대인 셈이다.

 1일 정식 업무를 시작한 구테흐스 총장이 반 전 총장과 눈에 띄게 다른 점은 메시지가 단순하면서 강렬하다는 점이다. 반 전 총장은 말꼬리 잡히지 않는, 신중하면서 모호한 외교적 수사(修辭)를 많이 구사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구테흐스 총장은 이날 발표한 신년사에서 “새해 첫날을 맞아 나와 함께 ‘평화를 최우선시 하자’는 하나의 새해 다짐을 결의하자”고 말했다. 이어 “내 마음속엔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과 분쟁에 시달리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느냐’는 하나의 물음이 무겁게 자리하고 있다. 평화가 우리의 목표이자 규범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7년은 평화를 위한 해’라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미국 일간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반 전 총장은 기후변화파리협정, 지속가능개발목표(SDG) 합의 등에선 성과를 보였지만 시리아 내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등 분쟁 해결 측면에선 적잖은 한계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평화의 해를 만들겠다’는 구테흐스 총장의 새해 다짐은 반 전 총장이 남긴 미완의 과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란 해석이다.

 구테흐스 총장의 분쟁 해결 노력과 관련해 주목받는 인물이 강경화 총장 정책특보(62·사무차장급). ‘유엔 최고위직 한국 여성’인 강 정책특보는 1일 전화 통화에서 “구테흐스 총장은 심각한 인권 유린, 내전이나 지역 분쟁의 문제가 심화되기 전에 유엔이 그 징후를 미리 발견해 경고하고 예방적 조치를 취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임무는 예방적 외교에 집중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 때문에 정책특보 자리를 신설했다는 설명이다.

 구테흐스 총장은 강 정책특보 이외에도 유엔 사무국 2인자인 사무부총장에 아미나 모하메드 나이지리아 환경장관을, 총장 비서실장(사무차장급)엔 마리아 루이자 히베이루 비오치 독일 주재 브라질 대사를 임명하는 등 3대 핵심 요직에 전부 여성을 기용했다. 미 언론들은 “남녀 ‘50 대 50’의 양성평등 세상을 구현하고, 유엔 내 지역적 다양성을 존중하겠다는 의지를 전례 없는 인사로 보여줬다. 이 역시 정치인 출신답다”고 평가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유엔 고위직 45개 중 32개(71.1%)를 남성이 차지하고 있는데 내 1차 임기(5년) 안에 남녀 5 대 5 비율로 바꿔 놓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12일 취임 연설에서 유엔 내부 조직 개혁에 대해서도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같은 달 16일 유엔출입기자협회(UNCA) 송년 만찬 행사에 불참했는데 그 이유도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았고 유엔에선 난민 문제를 다뤄 왔다. 나비넥타이를 매는 화려한 만찬 행사에는 참석하지 않는 게 나의 소신”이라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구테흐스 총장은 최근 ‘유엔은 사교클럽에 불과하다’는 취지의 부정적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71)과 ‘최대한 빨리’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미국은 유엔의 최대 후원자일 뿐만 아니라 유엔의 실질적 행동을 가능케 하는 근본 토대 같은 국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당선인과의 면담 성사 여부와 그 내용이 구테흐스 총장의 첫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미 언론들은 전망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유엔#구테흐스#반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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