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상근]그리스에서 배운 리더의 덕목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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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지성의 탄생지 그리스… 방향 잃은 나라로 주저앉아
경기침체와 50%대 청년실업… 위대한 리더의 전통 사라진 탓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식견, 그것을 명료하게 설명하는 능력,
애국심과 재물 욕심 내려놓기… 우리에게는 이런 리더 있는가

김상근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
김상근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
도반 몇 분과 그리스 역사를 공부하고 있다. 시대의 징조가 하 수상한 연유에 대해, 리더의 부재와 리더십의 위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공부 모임이다. 남 탓하기 전에 우선 자신을 돌아보자는 자책과 반성의 모임이기도 하다. 그동안 호메로스,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플라톤, 크세노폰의 책을 함께 읽었다. 기원전 5∼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에 닥쳤던 국가적 위기 앞에서 그 시대의 인물들은 어떤 리더의 덕목을 지켰는지를 공부했다. 좋은 공부 모임을 이끌기 위해 여름방학의 소중한 시간을 할애해 그리스를 답사하고 왔다.

예상과 달리 그리스는 매우 쓸쓸했다. 한때 인류 지성의 불을 밝혔던 지혜의 나라 그리스는 혹독한 경기 침체로 신음하고 있었고 담벼락에 갈겨놓은 지저분한 낙서(그라피티)들이 그리스의 암울한 현실을 말해 주는 것 같았다. 관광객으로 북적거리던 아테네의 모나스티라키 광장은 활력을 잃었고 할 일이 없어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그리스 청년들만 가득했다. 2016년 8월 기준 그리스의 전체 실업률은 23.52%에 달했다. 그중에서 청년실업률은 50.30%라는 충격적인 보도를 보는 그들의 힘없는 시선에서 쓸쓸함과 비애를 함께 느꼈다.

그리스인들은 위대한 민족이다. 세계 최강의 페르시아 군대가 침공해 왔을 때 그리스인들은 일치단결하여 나라를 지켜냈다. 테르모필레에서는 스파르타 용사 300명이 레오니다스 왕과 함께 목숨을 바쳤다. 그리스에서 철학이 탄생했고, 과학과 역사와 예술이 탄생했다.

특히 아테네의 위대한 리더들은 탁월함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민주주의의 기초를 놓은 솔론, 페르시아 대군을 물리친 지략의 장군 테미스토클레스, 내전의 위기에 빠진 조국을 구한 불세출의 지도자 페리클레스가 아테네에서 배출됐다. 그런데 왜 지금 그리스는 땅바닥에 주저앉은 것일까.

격동기 그리스의 역사를 기록했던 투키디데스는 페리클레스와 같은 탁월한 리더가 사라진 아테네의 미래를 염려했다. 그가 역병에 걸려 죽자(기원전 429년) 아테네는 위대한 지도자를 잃었고 그리스의 미래에는 짙은 역사의 어둠이 몰려온다. 탁월한 리더가 부재한 나라는 나아갈 역사의 방향을 상실하게 된다.

페리클레스는 탁월한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네 가지로 설명한 바 있다. 지금 권력을 잡고 있는 모든 나라의 지도자들과 장차 대권을 꿈꾸는 미래의 리더들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첫째,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식견, 둘째, 그 식견을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대화능력, 셋째,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재물에 대한 욕심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페리클레스가 리더의 네 가지 덕목을 밝혔던 때는 상황이 만만치 않았다. 아테네의 주적이었던 스파르타가 무력 침공을 멈추지 않았고 아테네 도심에서 전염병이 창궐하여 민심이 흉흉하던 때였다. 동시에 전쟁과 역병에 시달리던 아테네인들은 페리클레스의 리더십에 불안과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페리클레스의 리더십은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발휘된 것이다.

청년실업률이 무려 50%가 넘어 나라의 방향을 잃어버린 채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2016년의 그리스는 지금 페리클레스와 같은 리더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나라의 방향을 설정할 식견을 가졌고, 적혀 있는 원고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현안을 국민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뛰어난 대화능력을 겸비했으며, 나라와 국민을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이를 위해서라면 돈 욕심을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리더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일주일간의 짧았던 그리스 답사 여행을 마치고 귀국해 보니 극렬했던 지난여름의 무더위가 어느새 물러가 있다. 일주일 전만 해도 사드 배치 문제로 온 나라가 두 진영으로 나뉘어 갑론을박하더니, 어느새 정국은 청와대와 한 신문사의 충돌 국면으로 전환돼 있다.

이 땅을 ‘다이내믹 코리아’로 명명하든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로 부르든 상관없다. 우리가 진정으로 묻고 싶은 것은 그리스에서 배운 리더의 덕목이다. 과연 우리 지도자들에게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식견이 있는지, 그 식견을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대화능력이 있는지,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기는 하는지, 그리고 진짜 돈 욕심이 없는지를 물어보고 싶다.
 
김상근 객원논설위원 연세대 신과대학 교수
#그리스#리더#경기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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