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철밥통 공무원’ 개혁 못해 국가부도 맞은 그리스의 비극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일 00시 00분


코멘트
그리스가 국제통화기금(IMF)에 상환하겠다고 약속한 채무 16억 유로(약 2조 원)를 끝내 갚지 못했다. IMF는 채무를 체납했다고 밝혔지만 기술적 표현일 뿐 사실상 디폴트(채무 불이행) 상태다. 1944년 IMF 출범 이후 선진경제국이 채무 상환에 실패해 국가부도에 이른 것은 71년 만에 처음이다.

이런 사태에는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그리스가 공무원 수와 공무원에 대한 과도한 특혜를 줄이는 개혁을 하지 못한 것이 큰 몫을 했다. 그리스에서는 노동가능 인구 5명 중 1명, 전체 숫자로는 85만 명이 공무원이다. 이들의 임금은 민간보다 평균 1.6배 많다. 1년에 14개월 치 월급을 받고 최소 한 달의 유급 휴가를 받는다. 공무원 월급 총액은 국내총생산(GDP)의 50%가 넘는다. 퇴직연금의 소득대체율은 95%로 퇴직 이전에 받던 월급을 거의 그대로 연금으로 받고 있다. 2010년 구제금융 이후 민간에선 150만 명의 실업자가 생겼으나 공무원들은 끄떡없었다.

그리스 공무원들이 철밥통이 된 것은 터키제국의 식민지 지배를 당하던 시절에서 비롯된 정치후견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정치인들이 핵심 지지자를 공무원으로 만들면서 공무원 수가 크게 늘고, 복지비용이 급증하고, 관료주의의 비효율성과 경직성으로 경제가 뒷걸음질하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이번에 IMF가 요구한 공무원 임금 및 연금 개혁을 그리스 정부가 정치 불안을 이유로 거부한 것은 공공 부문이 아예 손도 댈 수 없는 심각한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그리스 사태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은 단기적으로 크지 않을 것으로 정부는 판단한다. 하지만 한국과 그리스는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반도 국가인 데다 혈연 지연의 강한 결속력, 식민 지배, 공산주의자들과의 대치, 군사독재 같은 공통된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어 유사한 측면이 많다.

우리 정치권은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반값 등록금, 공무원연금 등의 포퓰리즘 경쟁을 벌이고 있다. 1981년 국내총생산(GDP)의 28%였던 그리스의 나랏빚은 작년 177%가 됐다. 한 세대가 흥청망청한 데 대한 응보다. 우리도 공짜만 좋아하고 개혁을 미루다가는 그리스와 같은 처지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한국은 외환위기 때 IMF의 구제금융을 받으며 엄청난 고통을 겪었지만 그 기억을 너무 쉽게 잊었다. 개인이든, 나라든 소득을 늘리지 않고 빚에 의존하다 보면 미래는 부도가 나게 돼 있다. 그리스 비극을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