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체제 상징 ‘중국의 사하로프’ 팡리즈 박사 美서 별세… 中당국 관련어 검색 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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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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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민주주의 원칙 신봉… 덩샤오핑에 인권서한 보내
‘톈안먼’ 때 美대사관 피신… 양국 비밀협상으로 미국행

1980년대 중후반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학생들에게 민주화와 인권개선을 역설하던 시절의 팡리즈 박사. 사진 출처 차이나타임스
1980년대 중후반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학생들에게 민주화와 인권개선을 역설하던 시절의 팡리즈 박사. 사진 출처 차이나타임스
△덩샤오핑(鄧小平): “미국이 팡리즈(方勵之)에게 범죄행위 자백서를 쓰라 하고, 우리는 범법자로 추방하고, 그는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추방 후에는 중국에 반대하는 언행을 하지 않는다는 책임을 미국이 지는 것입니다.”

△헨리 키신저: “그가 대사관을 나간 뒤 미국이 자백을 강요했다고 하면 아예 자백하지 않은 것보다 고약한 상황이 됩니다. 그의 석방은 중국의 자신감의 징표입니다. 미국에 있는 많은 (중국의) 적들이 만든 중국의 캐리커처는 틀렸음을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미국은 (석방 후) 그가 미 대통령의 접견을 받지 않으며, 그 어떤 정부 기관에 의해서도 공식 직함을 부여받지 않을 것이라고 동의할 수도 있습니다.”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지난해 펴낸 저서(‘중국 이야기’)의 한 대목이다. 그는 1989년 6·4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강제 진압된 직후 베이징 주재 미 대사관에 부인 리수셴(李淑한) 여사와 함께 피신해 있던 중국의 대표적 반체제 인사이자 천체물리학자인 팡리즈의 석방협상을 둘러싼 회담 비화를 소개했다. 1989년 11월 키신저의 베이징 방문 시 마이크조차 끈 채 진행한 비밀 회담이었다.

미중 비밀 협상 합의에 따라 대사관 피신 13개월 만에 ‘신병 치료’ 명분으로 미국으로 간 팡리즈가 애리조나 주 투산 시에서 향년 76세로 사망했다. 현대 중국 반체제 운동사의 상징적 인물이 객지에서 생을 마감한 것이다.

톈안먼 민주화 시위 세대인 ‘89세대’의 정신적 지주였던 팡리즈는 ‘중국의 사하로프’로도 불렸다. 그가 시위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지만 학생들은 그가 강조한 민주주의와 개인의 권리에 대한 원칙을 신봉했고, 중국 당국은 피신한 팡리즈 부부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미국은 당시 팡리즈의 석방을 위해 ‘톈안먼 사태 이후 미국이 중국에 취한 제재 조치를 종료할 것을 발표한다’고 약속했다. 그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해외 망명 활동 중인 톈안먼 민주화 지도자 왕단(王丹) 씨는 팡리즈의 사망 소식에 “그는 나의 정신적 스승이었다”며 “중국 인민들은 그와 같은 사상가가 있었음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자랑스러워 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1936년 2월 베이징에서 태어난 그는 16세에 베이징대 물리학과에 입학해 레이저 분야 이론을 개척했다. 문화혁명 때 농촌으로 쫓겨 갔으나(하방) 연구활동을 계속하고 문혁 종식 후에는 국제적으로도 명성을 쌓았다.

그는 과학연구와 함께 인권 개선과 민주주의 개혁을 촉구하는 글과 연설을 발표해 ‘중국 당국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키신저의 표현)했다. 안후이(安徽) 성 허페이(合肥) 과학기술대 부학장이던 1986년 12월 시위 선동 혐의로 공산당에서 제명됐다. 1989년 1월에는 정치범 석방을 촉구하는 서한을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애리조나대에서 약 20년간 물리학 교수를 지내면서 두드러진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죽을 때까지 인권을 얘기했다고 뉴욕타임스는 7일 전했다. 그의 사망에 대해 중국 대륙의 언론은 침묵했으며 7일 오후부터 중국 인터넷상에서 관련 내용의 검색이 완전히 차단됐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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