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론’ 진화생물학자 도킨스 교수 - 英성공회 수장 캔터베리 대주교, 화제의 공개토론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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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 교수 “창조주가 존재한다면 왜 인간이 고통을 받나”
캔터베리 대주교 “신은 전지전능함에도 더 큰 어려움 주진않죠”

‘만들어진 신’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등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통해 무신론을 주장해온 세계적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교수(옥스퍼드대)와 영국 성공회의 수장 로언 윌리엄스 캔터베리 대주교가 23일 신의 존재를 화두로 ‘대화’를 나눴다.

이번 공개토론은 10일 영국 법원이 지방 의회에서 회의 전 기도를 올리는 의식을 불법으로 결정한 데 대해 논란이 일자 옥스퍼드대가 매주 여는 대담 프로그램 중 하나로 기획돼 열렸다. 토론장인 옥스퍼드대 셀도니언 극장을 가득 메운 청중은 1시간 20분간 이어진 토론을 숨죽여 지켜봤다. 박수나 야유는 금지됐다.

도킨스 교수는 “물리학의 법칙에 따르면 원자의 조합으로 곤충도, 캥거루도, 우리도, 지구도 만들어낼 수 있다. 다윈도 이를 밝혔다. (태초에) 아무것도 없는데 이 모든 것이 생겼다는 건 이해하기도, 믿기도 어렵다”고 말문을 연 뒤 “정말 육신이 죽어도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가”라고 물었다.

그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캔터베리 대주교는 간결하게 “그렇다”고 답한 뒤 “육신이 죽는다고 영혼이 사라지진 않는다. (그러나) 뭐라고 말로 설명할 순 없다”고 말했다.

이어 도킨스 교수가 “왜 (유신론자들은) 신이라는 혼란스러운 존재를 만들어 세상을 어지럽히나. 21세기 과학은 이미 여러 문제를 해결했으며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도 미래에 풀릴 것”이라고 하자 대주교는 “나는 신이 어떤 형태로 규정돼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굳이 정하자면) 사랑과 수학(이성에 대한 비유)의 조합으로 부르겠다. 성경을 쓴 사람들은 21세기 물리학자들에게 영감을 주려고 한 게 아니라 신이 원하는 걸 전달해주려 한 것”이라고 답했다.

“신이 창조주라면 왜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가”(도킨스 교수) “어려운 문제다. 그러나 신이 왜 더 큰 어려움을 주지는 않을까도 생각해 봐야 한다”(대주교)는 문답도 오갔다.

토론은 대부분 도킨스 교수가 열정적으로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다 질문을 던지고, 대주교는 가만히 듣다가 간단하게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텔레그래프가 전했다. 상대를 몰아붙이기보다 정중하게 인정하는 말들도 오갔다. 도킨스 교수는 “나 역시 문화적으로는 영국 성공회(에 젖어 있는 사람)”라고 했고, 대주교도 자신의 크리스마스 설교 내용을 도킨스 교수가 책에 인용한 점에 고마워했다.

텔레그래프는 도킨스 교수가 이날 “전체를 7이라 가정할 때 나는 6.9 정도의 확신으로 무신론자이지만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무신론자라기보다 불가지론자로 불리길 원한다”고 말한 대목을 인용하며 도킨스 교수가 한발 물러섰다고 전했다.

이날 대화를 두고 가디언, 로이터 등은 ‘지적 버전의 세계 헤비급 타이틀전’이라고 표현했지만 날선 공방이 오가리라는 예상과 달리 시종 차분하게 이뤄졌다. 상대를 녹다운시키는 ‘강한 한 방’이 없어 실망스러웠다는 의견도 나왔다. 토론이 끝난 뒤 청중은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수천 년째 이어져온 영원히 승부를 낼 수 없는 논쟁 아니냐”고 입을 모았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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