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코지-메르켈 밀월 ‘토빈세’로 깨지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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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독일과 상관 없이 도입”
獨 “프랑스 단독추진 안돼”

외환거래에 세금을 부과하는 금융거래세(토빈세) 도입 문제가 유럽연합(EU)의 뜨거운 현안으로 급부상하면서 유럽이 다시 사분오열하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9일 독일 베를린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양국은 금융거래세의 필요 원칙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사르코지 대통령은 6일 “금융거래만 과세하지 않는 건 용납할 수 없다. 다른 나라가 불참해도 프랑스가 먼저 하겠다”고 밝혔다. 앙리 게노 엘리제궁 특보는 “독일이 즉각 동참하지 않더라도 (프랑스가) 주도적으로 나갈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불렀다.

메르켈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프랑스의 솔선행위는 좋다고 본다”며 “개인적으로 EU가 안 된다면 유로존 차원에서 도입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정부의 최종 결론이 나지 않았고 3월 말까지 초안이 마련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럽 차원의 공동 도입이 필요하다는 기존 입장을 바꾸지 않은 것. 같은 날 슈테판 사이베르트 독일 정부 대변인도 “목표는 유럽 전체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30일 EU 정상회담에서 토빈세에 대한 결론을 내기는 어려워졌다.

토빈세 도입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8일 “프랑스가 자국에만 도입하려면 얼마든지 하라”며 “전 세계의 나머지 국가에서 동시에 동의하지 않으면 영국은 반대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유럽에만 도입되면 일자리와 소득세 등에서 큰 피해가 발생하고 금융기관이 대거 탈출하는 상황을 보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국은 금융 관련 산업 비중이 30%에 이른다.

과거 장관 시절 “불합리하다”고 비판했던 토빈세 도입에 사르코지 대통령이 목을 매는 건 코앞에 다가온 대선을 고려했다는 분석이다. 경제위기로 긴축정책이 확대되면서 일자리와 연금 등에서 직격탄을 맞은 서민층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프랑수아 바루앵 재무장관이 “현 위기의 상당 부분이 금융 산업에서 비롯됐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라며 토빈세의 도덕적 당위성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9월 EU 집행위는 2014년부터 주식과 채권 거래 시 0.1%, 기타 파생상품 등 거래 시 0.01%의 세금을 부과하자고 제안했다. 집행위는 8일 EU 전체 동의 대신 9개국 동의만으로 시행 가능한 규정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EU 내에서도 토빈세에 반대하는 나라가 많다. 1980년대 토빈세를 도입했다 금융산업 엑소더스로 큰 피해를 본 뒤 토빈세를 폐지한 스웨덴은 “빚이 많은 나라의 차입 비용을 늘려 경제성장을 저해하고 결국 고객 비용으로 전가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탈리아도 EU 전체에 부과하자는 견해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는 금융기업이 미국 홍콩 등 유럽 밖으로 이전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오스트리아 벨기에는 찬성한다. 금융거래세는 지난해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제였으나 미국 영국 등 상당수 국가의 반대로 무산됐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 토빈세 ::


해외 주식, 채권, 외환 등 금융상품 국제거래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제임스 토빈이 1972년 처음 주장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유럽연합(EU)에 0.1%(토빈은 0.5%를 주장)만 도입해도 한 해 550억 유로 이상을 거둘 수 있으니 이를 경제 위기 해소 재원으로 쓰자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융 산업 비중이 큰 영국은 EU가 전체 토빈세의 80%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며 반대한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2010년 현재 세계 외환 거래 중 36.7%가 영국에서 일어나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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