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없는 볼리비아 슈샤인 보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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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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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에만 구두닦이 3500명, 차별-편견속 복면-모자쓰고 생활
최근 신문발행 등 권익찾기 나서

사진 출처 워드프레스닷컴
사진 출처 워드프레스닷컴
볼리비아의 행정수도 라파스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상 깊게 기억하는 모습이 있다. 호객행위를 벌이는 수천 명의 ‘루스트라보타스(스페인어로 구두닦이)’들이다. 약 3500명으로 추산되는 이들은 사시사철 두꺼운 검은색 발라클라바(안면보호 마스크)와 푹 눌러 쓴 야구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볼리비아의 ‘구두닦이’들이 복면을 한 채 구두를 닦는 데는 사정이 있다. 그들은 “발라클라바와 야구모자는 우리에 대한 차별과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유일한 방패”라고 말한다. 14세 때부터 구두를 닦아온 하비에르 마마니 씨(31)는 매일 아침마다 “아빠는 왜 마스크를 써요?”라고 묻는 아들에게 “혹시 이웃들이 아빠를 알아보고 ‘구두닦이다, 구두닦이!’라고 소리칠까 봐 두렵기 때문이지”라고 대답한다.

영국 BBC 보도에 따르면 이들이 구두 한 켤레를 닦고 버는 돈은 346원. 그들이 사회의 최하층 계급처럼 무시당하고 차별받는 데는 돈을 못 번다는 점보다 좀 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주로 고아들이나 폭력 가정에 방치된 어린이들은 10대 초반부터 구두닦이의 길로 들어선다. 사회의 편견과 고된 하루살이에 지칠 때면 본드를 흡입하면서 몽롱한 상태를 즐기고 유대감을 형성하기도 한다. 커서 좀도둑이나 알코올의존증환자, 마약 중독자 등으로 타락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수록 사회는 이들을 불신 어린 시선으로 대하고 이들은 복면으로 얼굴을 감추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그러나 최근 이들이 스스로의 얼굴과 권익을 되찾기 위한 작은 노력을 시작했다. 첫걸음은 신문 ‘오르미곤 아르마도’의 창간이었다. 격월로 4000부씩 발행되는 이 신문은 동료 루스트라보타스들에게 한 부에 60센트씩 팔린다. 이를 통해 얻은 수익은 다시 더 어려운 처지의 동료들을 돕는 데 쓰인다. 특히 어려운 처지의 가정에 식료품이나 잠을 잘 수 있는 공간 등 기초생활 여건을 마련해 주고, 야학에 등록해 새 기술을 배우고픈 구두닦이들의 재교육을 위한 보조금도 지원한다.

올해는 그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한 해였다. 루이스 레비야 라파스 시장은 “루스트라보타스들은 라파스 경제의 초석”이라며 구두닦이를 정식 직업으로 인정했다. 이제 볼리비아 구두닦이들은 전국에 12개 단체지부를 갖추고 있는 어엿한 직업인으로 자리 잡았다. 라파스 주요 상업 지구지부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마마니 씨는 BBC에 “사실 장모님은 아직도 내가 구두닦이인 줄 모른다”고 털어놓았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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