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이 내 인생 망쳐…” 美망명후 부친 맹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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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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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의 ‘작은 참새’ 외동딸 스베틀라나 美서 사망

옛 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의 딸로 태어나 서방과 소련을 오가며 두 체제를 번갈아 비난하는 등 소설 같은 삶을 살아온 스베틀라나 스탈리나(사진)가 22일 미국 위스콘신 주 리치랜드센터에서 결장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85세. 뉴욕타임스는 28일 스베틀라나가 말년에는 은둔생활을 함에 따라 그의 죽음이 늦게 알려졌다고 전했다. 4차례 이상 결혼하고 이름이 세 개인 것도 굴곡 많은 일생을 보여준다.

○ 귀여움 받던 딸, 아버지와 틀어진 사연


1926년 2월 28일 태어난 스베틀라나는 아버지 스탈린(1879∼1953)의 귀여움을 받았다. 철권 통치자로 그의 치하에서 수백만 명이 희생됐지만 스탈린은 집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딸을 ‘작은 참새’로 불렀다. 그녀의 이름은 당시 소련에서 유명해져 많은 아이들이 ‘스베틀라나’라는 이름을 쓰고, 같은 이름의 향수도 등장했다.

스베틀라나는 여러 가지가 겹치면서 아버지와의 관계가 틀어졌다. 1932년 맹장염으로 죽었다던 생모가 사실은 자살한 것을 후에 알게 된다. 그녀의 배다른 오빠 야코프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 나치에 붙잡힌 후 독일 장교와의 맞교환을 제안받았지만 아버지가 거절해 처형되자 아버지의 냉혹함을 느꼈다.

무엇보다 스탈린은 그녀의 첫사랑인 유대계의 시나리오 작가 알렉세이 카플레르를 여러 번 총살하려고 했으며 결국은 시베리아의 강제수용소로 10년간 추방했다. 또 그녀가 다른 유대인 그리고리 모로조프와 결혼하고 싶다고 했을 때 스탈린은 딸을 때리고 모로조프를 만나지 말 것을 강요했다. 하지만 그녀는 1945년 모로조프와 결혼하고 아들 이오시프를 낳았으나 1947년 이혼했다.

○ 망명 후 두 체제 오가며 비판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후 그녀는 많은 특권을 잃었다. 당시 소련 정부는 그녀가 모스크바를 방문 중이던 인도의 공산주의자 브라제시 싱과 결혼하는 것도 반대했다. 싱이 1967년 초 사망하자 그녀가 유골을 가지고 인도로 가는 것도 마지못해 허가했다.

아빠 품에서 스탈린이 스베틀라나 스탈리나를 ‘작은 참새’로 부르며 귀여워하던 시절 행복했던 부녀의 모습.
아빠 품에서 스탈린이 스베틀라나 스탈리나를 ‘작은 참새’로 부르며 귀여워하던 시절 행복했던 부녀의 모습.
인도에 온 그녀는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을 따돌리고 뉴델리의 미국대사관에 들어가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 미국은 신속히 중앙정보국(CIA) 요원을 파견해 망명을 도왔다. 당시 KGB는 그녀의 암살을 계획하기도 했다.

1967년 4월 뉴욕에 도착한 그녀는 기자회견을 하고 소비에트 체제를 비난했다. 그해 말에는 자서전 ‘친구에게 보내는 20통의 편지’를 출간해 250만 달러를 벌어들이기도 했다. 1969년에는 망명 과정을 담은 두 번째 자서전 ‘단지 일 년’을 펴냈다.

미국 뉴저지 주 프린스턴에 정착한 후에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소련 여권을 불태우고 다시는 고국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스탈린에 대해서는 ‘도덕적 정신적 괴물’이라고 비난하고 소비에트 체제는 심각하게 부패했다고 비난했다.

美의 품으로 스베틀라나 스탈리나는 아버지가 숨진 지 14년 후 미국으로 망명했다. 1967년 4월 뉴욕에 도착한 스베틀라나가 환영을 받고 있다. 사진 출처 뉴욕타임스
美의 품으로 스베틀라나 스탈리나는 아버지가 숨진 지 14년 후 미국으로 망명했다. 1967년 4월 뉴욕에 도착한 스베틀라나가 환영을 받고 있다. 사진 출처 뉴욕타임스
1970년 미국인 건축가와 결혼해 딸 올가를 낳았으나 1973년 이혼했으며 미국 시민권은 1978년 획득했다. 자신에 대한 옛 소련의 입국 통제가 풀리자 1984년 11월 올가와 함께 아들 이오시프를 만나기 위해 모스크바에 간 그녀는 이번에는 “서방에서는 하루도 자유가 없었다”며 태도를 바꾸었다. 자신은 “CIA의 애완동물”이었다고도 했다. 소련 국적도 회복했다. 하지만 당국과의 불화로 생활이 곤궁해졌으며 아들 이오시프마저 자신을 멀리하자 1986년 4월 미국으로 돌아왔다. 이후 자신이 모스크바에서 했던 발언들을 부인하고 특히 ‘CIA의 애완동물’ 발언은 와전된 것이라고 말을 뒤집었다.

지난해 지역 일간지 ‘위스콘신 스테이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선 “스탈린이 내 인생을 두 차례나 망쳤다”며 “어딜 가든 그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없었으며 아버지 이름의 정치적 죄수였다”고 말했다. 미국으로 망명한 후 영국 프랑스 등 여러 국가를 떠돌고 미국에서도 여러 도시를 전전했던 스베틀라나는 말년을 홀로 위스콘신 주의 단칸방 아파트에서 보냈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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