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 특파원이 겪은 美 ‘10월 폭설’ 대규모 정전사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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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점 콘센트마다 ‘전기 難民’ 장사진…

4곳 방황, 2시간 기다려 노트북 충전

미국 동북부에 59년 만에 ‘10월의 눈폭풍’이 몰아친 다음 날인 10월 30일 아침 기자는 노트북을 들고 집을 나섰다. 정전으로 암흑의 밤을 보낸 뒤 충전할 곳을 찾으러 기약 없이 나선 것이다. 뉴저지 주 노스베일의 한 스타벅스 매장에 들어갔더니 이미 젊은이 10여 명이 줄을 서 있었다. 커피 주문을 위한 줄이 아니었다. 각자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들고 전기 콘센트가 비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발길을 돌려 외식업체인 ‘파네라 브레드’에 들렀지만 마찬가지였다. 노트북을 들고 온 학생들과 부모들, 직장인들이 전기 콘센트를 확보하기 위해 북새통을 이뤘다. 지상의 전봇대를 통해 전기 공급이 이뤄지는 민간 주택과 달리 상당수 상업시설은 전기선이 지하로 매립되어 있고 백업시스템을 갖고 있어 전기가 들어오는 곳이 많았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거기는 전기 사용할 수 있느냐”고 수소문하다가 “곧 갈 테니 잡아놓고 기다려라”며 후다닥 달려 나갔다. 기자는 네 번째 찾아간 곳에서 2시간을 기다린 끝에 겨우 콘센트에 노트북 전원플러그를 꽂을 수 있었다.

세계 최대 강국 미국에서 전기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모습은 ‘전기 난민(難民)’을 떠올리게 했다. 핼러윈데이인 31일에도 고난은 이어졌다. 한 커피숍에 전원 콘센트가 2개밖에 없자 참다못한 한 고객은 인근 상점에 들러 8개를 꽂을 수 있는 멀티콘센트를 직접 사 오기도 했다. 동네에 그나마 전기가 끊기지 않은 집은 충전을 위해 찾아오는 지인들의 방문에 진땀을 흘렸다. 웬만한 전기 기기의 충전에는 한 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순번제가 적용됐다. ‘월가 점령’ 농성 7주째를 맞은 시위대는 발전이 가능한 자전거를 갖다 놓고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점거 농성을 이어가는 진풍경도 연출했다.

때 이른 폭설 이후 뉴욕 뉴저지 코네티컷 주 등 미 동북부 지역은 혹독한 ‘전기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200여만 가구가 31일까지 사흘째 암흑 속에서 영하 추위에 떨고 있다. 한때 330만 가구의 전기가 끊겼다. 복구도 더뎌 4일(금요일)에야 대부분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피해가 커진 데는 나뭇잎이 아직 많이 남아 있는 가을에 눈이 내린 것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나뭇잎 때문에 눈의 무게가 가중돼 나무들이 쓰러지면서 전선을 건드린 것이다.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는 “이번 폭설로 부러진 나무가 허리케인 아이린 때보다 많아 피해 복구에 며칠이 더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한 주재원은 “집 대신 호텔에 묵기 위해 알아봤는데 방이 없다”며 “눈 한 번 왔다고 며칠 동안 전기를 못 쓰는 이곳이 진짜 미국이 맞느냐.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전기가 필요 없는 가스히터와 이참에 아예 자가발전기를 구하겠다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관련 제품은 모두 품절됐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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