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cupy’ 시위 전세계 확산]“월가 범죄자 기소”… 분노, 탐욕의 종말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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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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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주째 맞은 월가 시위 국경넘어 조직화-장기화

9일 오후 미국 시카고 시카고연방준비은행 앞. ‘월가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를 본떠 이곳에서 ‘시카고를 점령하라’는 시위를 벌이던 300여 명의 시위대 중 한 명인 에블린 드하이스 씨가 정부 요구사항 12개를 발표했다. 그는 전날 밤 “정책 개혁을 이끌어내기 위해 필요하다”며 시위대원을 설득해 수백 개의 요구사항을 12개로 줄였다고 했다.

이날 밝힌 시카고 시위대의 주장은 ‘탐욕과 부패를 통해 금융자본과 부유층만 살찌운 카지노식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개혁’이 핵심이다. 유럽에서 확산되고 있는 시위대의 주장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시위의 밑바탕에는 투기를 통한 일확천금이 판치는 금융자본주의의 탐욕에 대한 분노와 개혁 열망이 배어 있는 것이다. 당초 해프닝 성으로 시작했고 다종다양한 의제와 구호, 주장이 뒤섞여 있어 올해 노벨 평화상 공동 수상자인 리머 보위 씨(39)로부터 “명확한 목표와 의제를 설정하라”는 충고까지 받았던 월가 시위가 4주째를 맞으면서 점차 자본주의 개혁운동으로 진용을 갖춰가고 있는 것이다.

○ 상대적 박탈감 갈수록 심화

시카고 시위대원들은 이날 12개의 요구사항을 투표에 부쳐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도입한 부유층에 대한 세금 혜택을 폐지하라는 주장과 월가 범죄자를 기소하라는 주장을 공식 요구조건으로 채택하고 향후 투표를 계속해 늘리겠다고 했다. 월가 시위대의 언론 담당을 맡고 있는 빌 돕 씨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월가 시위대가) 어떤 요구를 공식 채택할지는 알 수 없지만 모든 에너지는 미 경제 상황에 경종을 울리는 데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월가 시위대는 사실상 첫 행동강령으로 ‘11월 5일을 대형은행의 계좌를 폐쇄하는 날로 정하자’는 전술을 제시하며 대형 금융회사를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월가 금융회사들은 이미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전부터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관련 증권을 파생상품화해 금융 전문가들조차 파악할 수 없는 복잡한 상품을 만들어 리스크를 전 세계에 확산시키면서 수익을 챙겨 왔다. 그러다 리먼 사태가 터진 뒤 미 정부는 7000억 달러라는 막대한 국민의 세금을 동원해 위기의 주범인 대형 금융회사를 구제했다. 하지만 탐욕과 부패의 습성을 버리지 못한 대형 금융회사들은 월급쟁이들의 수백 년 치 급여를 연봉으로 주는가 하면 골드만삭스와 JP모건체이스는 직원 1명당 각각 59만 달러와 46만 달러의 보너스를 뿌리는 ‘돈 잔치’를 벌여 왔다. 금융회사 구제에 세금을 희생한 서민들은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을 갚지 못해 집을 압류당하고 거리로 나앉았다. 서민들은 집을 빼앗긴 것으로도 모자라 남은 빚을 갚으라는 소송에 시달리고 일자리를 얻지 못해 개인파산에 내몰리고 있다.

○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의 종언?

문제는 이 같은 상대적 박탈감이 미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 상대적으로 빈부격차가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받아 왔던 유럽에서조차 1980년대 중반 0.28이었던 유럽연합(EU) 회원국의 지니계수가 2000년대 후반에는 0.31로 높아졌다. 지니계수는 1에 근접할수록 불평등이 심하다는 얘기다. 그나마 재정지출을 통해 빈부 격차를 줄여왔던 정부의 재정 시스템도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 특히 유럽의 경우 재정위기로 정부의 지출을 줄이면서 서민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미국은 정부가 푼 돈이 대형 금융회사와 대기업으로 흘러들어가 고용 창출이나 가계 대출로 연결되지 않고 ‘그들의 손’에 고여 있는 상태다.

장기불황에 시달리는 일본도 지난해 국민생활기초조사 결과 저소득층 비율을 나타내는 상대적 빈곤율이 16%에 달해 관련 통계를 시작한 1985년 이후 최고치였다.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오른 중국도 상위 10% 부유층과 하위 10% 빈곤층의 소득격차가 무려 40배에 달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10여 년간 세계를 지배해온 신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 자체가 위기를 맞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잇따르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 자율과 경쟁, 자본의 논리를 철저히 중시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국가의 부(富)가 커지고 경제 주체인 기업과 국민도 부유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2011년 10월 전 세계는 전혀 다른 결과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월가의 대표적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최근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떤 부분에서 자본주의는 자기 파괴적”이라며 “(개혁 없이)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두 번째 대공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라고 경고했다.

뉴욕=박현진 특파원 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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