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크-드빌팽-르펜, 아프리카서 거액 받아”… 부르지의 ‘입’, 佛 뒤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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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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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프랑스의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지도자들이 옛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의 독재자들에게서 거액의 뇌물을 받고 정권 유지를 돕는 검은 커넥션을 유지했던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프랑스의 아프리카 외교를 주물러온 숨은 실세 로베르 부르지 변호사(66)는 아프리카 권력자들과 지난 정권 프랑스 고위 정치인 간의 검은 돈거래를 연일 폭로하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비공식적인 아프리카 자문관을 맡고 있는 부르지 씨는 11일부터 카날플뤼스 방송, 주간지 주르날뒤디망슈 등을 통해 정치인 사이에서 이뤄진 충격적인 뒷거래 내용들을 털어놓았다.

부르지 씨에 따르면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은 1980, 90년대 파리시장 재직 때 집무실에서 세세 세코 모부투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 대통령 등에게서 여러 차례에 걸쳐 1500만 프랑(약 20억 원) 이상의 현금을 받았다. 시라크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때인 1995∼2005년에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 대통령들에게서 2000만 달러(약 221억 원) 이상을 받았다. 특히 2002년 대선 때는 시라크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가 세네갈, 부르키나파소, 코트디부아르, 콩고, 가봉 등 5개국 대통령에게서 1000만 달러(약 110억 원)의 선거 자금을 받았다. 오마르 봉고온딤바 가봉 대통령은 시라크파 핵심 모임인 ‘클럽89’의 파리 몽테뉴가 사무실 임차료(1981∼1992년)와 극우 국민전선 장마리 르펜 당수의 1988년 대선 자금까지 지원했다.

부르지 씨는 “이런 일은 흔적이 없다. 오로지 양심에 따라 밝힌 것”이라며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이에 시라크, 드빌팽, 르펜 씨 측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파리 검찰은 13일 예비조사에 착수했으며 부르지 씨를 곧 소환할 계획이다. 사회당과 녹색당이 의회 조사를 촉구하는 등 ‘부르지 스캔들’은 프랑스 정가에 핵 폭풍을 몰고 왔다. 발레리 페크레스 정부 대변인은 “정부의 아프리카 정책은 혁명적으로 바뀌었다”며 검찰 수사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부르지 스캔들로 프랑스와 아프리카 옛 식민국의 정치 경제적 혈맹 관계 뒤에서 은밀히 이어져온 지도자들 간의 더러운 커넥션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아프리카 독재자들이 국제사회에서 정통성을 인정받으며 권력을 연장하려는 목적으로 옛 식민종주국 대통령에게 불법적인 돈을 건넸다는 정황이 직접 드러난 건 처음이다. 물론 검은돈의 대가는 아직 드러난 게 없다. 하지만 겉으론 인권과 민주주의를 말하며 뒤로는 아프리카 권력자의 향응을 받아 호화 여행을 하거나 뇌물을 받는 걸 자연스러운 일로 간주해온 프랑스 정치 문화의 어두운 단면이 드러났다. 현 정권의 프랑수아 피용 총리와 미셸 알리오마리 전 외교장관도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 벤 알리 전 튀니지 대통령 측 등 민주화 봉기로 물러난 독재자의 향응으로 여행을 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부르지 씨가 증거도 없이 감옥행 가능성까지 무릅쓰며 폭로한 배경도 관심거리다. 레바논계로 세네갈에서 태어난 그는 봉고온딤바(가봉), 드니 사수응게소 대통령(콩고) 등과의 깊은 친분을 바탕으로 1980년대 시라크 시장 시절부터 보좌관으로 일하며 아프리카 정책을 휘둘러온 숨은 실력자였다. 프랑스 언론은 “부르지의 파워에 외교 실무자들은 두려움을 느꼈을 정도”라고 전했다. 부르지 씨는 이번 폭로는 “깨끗한 프랑스”를 위한 충정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계에선 부르지 씨의 주군인 사르코지 대통령의 내년 대선을 위한 폭로라는 추측도 나돈다. 로레알그룹의 대주주로부터 거액의 정치자금을 받는 현장을 목격했다는 증언이 잇따르며 위기에 몰린 사르코지 대통령이 국면 전환을 시도하는 동시에 대선의 잠재적 라이벌인 드빌팽 전 총리를 제거하는 양수겸장을 노렸다는 것이다.

파리=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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