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中 차기 지도자로]2012년 5세대 지도자에 오를 시진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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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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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탈한 황태자… 인화로 집단지도체제 리더 굳혀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2년 뒤인 2012년 10월 후진타오(胡錦濤) 당 총서기의 뒤를 이어 차세대 최고지도자에 오를 황태자로서 자리를 확실히 굳혔다. 시 부주석은 18일 중국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에 선출됨으로써 후 주석이 후원하는 리커창(李克强) 부총리와의 치열한 선두경쟁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가을 열린 제17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에서 당초 예상과 달리 군사위 부주석에 선출되지 않음에 따라 제기됐던 ‘대권가도 이상설’도 말끔히 씻어냈다.

중국 지도부 내엔 일찍부터 회자돼 온 우스개가 있다. 시 부주석의 이름에 조력자가 3명이나 포진해 그의 미래가 밝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시(習)-윗세대 장점을 배우는(習) 데 뛰어나고, 진(近)-당 간부와 인민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데 발군이며 핑(平)-(성격은) 소박하고(平) 겸손하며 온화하다’는 것.

시 부주석이 좋아하는 역사적 인물도 진시황(秦始皇)이나 한무제(漢武帝), 당태종(唐太宗), 칭기즈칸 같은 불세출의 영웅이 아니다. 그는 되레 유방(劉邦)이나 유수(劉秀), 유비(劉備) 등 ‘걸출한 재능은 없어도 인화단결을 잘하는’ 인물을 숭앙한다.

그의 정치적 업적이 다른 경쟁자보다 크게 뛰어나지 않음에도 최고지도자 자리를 ‘예약’할 수 있었던 데는 성과보다 인화를 더 중시하는 그의 성격과 중국의 현 정치판도 및 시대적 요구가 묘하게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그를 접촉해본 사람들은 대부분 “소탈하고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의 한 국회의원은 지난해 시 부주석을 베이징(北京)에서 예방한 뒤 “내 말을 경청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국무원 부총리를 지낸 시중쉰(習仲勳)의 아들로 태자당(太子黨)이지만 상하이방(上海幇)이나 중국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共靑團) 출신인 퇀파이(團派)와도 관계가 원만하다. 2008년 1월 시진핑 평전을 출간한 우밍(吳鳴)은 쩡칭훙(曾慶紅) 전 국가부주석이 “시진핑이 리커창을 뛰어넘어 황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각 방면’에서 모두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1인 독주체제’에서 실질적인 ‘집단지도체제’로 옮겨가는 중국 정치의 시대적 요구도 한몫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그를 주목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는 ‘혁명 원로의 아들’ 또는 ‘유명 민족성악 가수 펑리위안(彭麗媛·48)의 남편’ 정도로 회자됐다. 하지만 2007년 10월 서열 6위의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됨으로써 서열 7위에 그친 리커창을 간발의 차로 제쳤다.

시진핑은 현재 국정 전반을 통할하는 후 주석을 보좌하는 국가부주석이자 중국 공산당의 일상 업무를 관할하는 중앙서기처의 제1서기다. 또 당의 이념과 고위 간부의 교육을 담당하는 중앙당교의 교장이자 중국 정부로서는 가장 중요한 정치문제인 중앙 홍콩·마카오 업무조정소조 조장도 맡고 있다. 이런 그가 이제 220만 인민해방군을 지휘하는 중앙군사위원회의 부주석으로 선출된 만큼 앞으로 이변이 없는 한 ‘황제 자리’인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은 이미 예약된 셈이다.

태자당이지만 젊은 시절 고생이 많았다.

문화대혁명(1966∼1976년)이 한창이던 1969년 산시(陜西) 북부의 궁벽한 황토고원으로 하방(下放)돼 7년을 보냈다. 칭화(淸華)대를 졸업한 뒤 중앙군사위 판공실에서 일하다 스스로 지방인 허베이(河北) 성 정딩(正定) 현으로 내려가 능력을 발휘했다. 소설과 드라마 ‘샛별(新星)’의 주인공으로 그려진 것도 이때 모습이다. 이후 푸젠(福建) 성에서 17년간 있으면서 성장까지 올랐다. 이후 저장(浙江) 성, 상하이(上海) 시 서기 등을 거쳤다. 슬하에 최근 미국 하버드대 입학설이 나온 외동딸 밍쩌(明澤·17)가 있다.

시 부주석은 남북한 문제에 두루 밝다. 시 부주석은 2008년 3월 취임 후 첫 번째로 평양을 방문해 북한 지도부와 상견례를 했고 올해 5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 때도 후 주석과 나란히 앉아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 참가했다. 지난해 12월 한국을 방문해 이명박 대통령뿐 아니라 정운찬 국무총리 등을 두루 만났다. 2005년 저장 성 당 서기 시절 방한한 적도 있다. 시 부주석은 한국인은 부지런하고 지혜롭고 열정이 많다는 인상을 가졌다고 한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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