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加 제외, 범아메리카 공동체 만들자”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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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카리브 32개국, 독자적 새 국제기구 창설 합의
“지역분쟁 해소에 도움” 기대… 美영향력 탈피는 미지수

미국과 캐나다가 겨울올림픽에 심취한 사이 다른 아메리카 대륙 국가들은 ‘그들만의 리그’를 선언했다.

중남미 국가 정치협력모임인 ‘리우그룹(Rio Group)’과 카리브 해 연안국 경제공동체인 ‘카리콤(Caricom)’ 32개국 정상들은 23일(현지 시간) 멕시코 칸쿤에 함께 모여 새로운 국제기구 창설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이번 합의를 통해 아메리카 대륙은 미국과 캐나다가 빠진 사상 초유의 ‘범(汎)아메리카 국제기구’를 갖게 됐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지역협력기구인 ‘미주기구(OAS)’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 미국을 벗어난 자주적 공동체의 꿈

이번 회담을 주최한 펠리페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은 이날 리우회담 폐회식에서 “새 국제기구는 남미와 카리브 지역 국가의 민주주의와 인권을 옹호하고 상호협력 증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회담에서는 OAS가 불법적으로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이유로 회원국 자격을 정지시킨 온두라스 정권의 국제사회 복귀를 긍정적으로 논의해 미국과의 차별화를 꾀했다. 이번 합의는 정치적으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아메리카 국가들이 ‘하나의 깃발’ 아래 모여 영향력을 펼치려 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CNN방송 등 외신은 “우익진영과 좌익진영을 아우르고 심지어 (1962년 OAS에서 축출당한) 쿠바까지 참여했다”며 “지역 현안에 대한 발언권에 강력한 힘이 실릴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멕시코는 이번 합의를 주도함으로써 미국의 그늘을 벗어나 독자적인 행보로 외교적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게다가 새로운 국제기구는 대륙의 고질적 분쟁 해소에도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 뉴욕타임스는 “갈수록 심각해지던 이 지역 긴장을 완화할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했다. 실제로 22일 회담 만찬에서도 갈등 관계에 있던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알바로 우리베 콜롬비아 대통령이 막말을 주고받는 설전을 벌였으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등이 중재해 위기를 모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 경제부흥 등 당면 과제 산적해

하지만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정상의 충돌(?)에서 보듯 새 국제기구는 불안요소가 상당히 많다. 창설 원칙엔 합의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둘째 치고 기구의 가칭조차 정하지 못했다. 외신들은 2011년 베네수엘라에서 열리는 회의에서나 기구의 윤곽이나 성격을 가늠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무엇보다 참여 국가들이 OAS를 바라보는 시각차가 확연한 것도 걸림돌이다. 베네수엘라나 쿠바 등 좌익이나 브라질 등 중도좌파 성향의 나라들은 새로운 국제기구가 OAS를 대체하길 바라고 있다. 그러나 콜롬비아나 칠레 등 친미 국가들은 OAS의 영속성을 주장하며 그 기능을 침범해선 안 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 역시 “새 국제기구는 지역 가난 해소 및 경제 부흥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엔개발계획(UNDP)과 중남미카리브경제위원회 등에 따르면 중남미 카리브 지역은 2008년부터 빈곤층 이하가 900만 명 이상 늘어나 이 지역 전체 인구의 약 47.8%(2억6500만 명)에 이른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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