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 1년, 기대 못미친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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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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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률에 고개 숙이고, 테러 기승에 어깨 처지고…
지지율 1년만에 70%→50%
부양책 영향 경제회복 조짐
20개국 찾아 평화 -화해 목청
중동 - 북핵 묵은 과제 그대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일 취임 1년을 맞는다. ‘변화와 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공화당 정권 8년을 심판하겠다던 오바마 대통령의 1년 성적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취임 때 70%를 웃돌던 지지율은 지금 50% 밑으로 떨어졌다. 미국 국민의 절반 이상은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걱정한다. 국론은 진보와 보수로 팽팽하게 엇갈려 있고 경제는 살아날 기미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1년의 명암을 짚었다.》

○ 오바마 발목 잡는 경제

2008년 여름 불어 닥친 금융위기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경제를 망쳐놓은 공화당에 대한 유권자의 심판은 자연스레 민주당 오바마 대선 후보에게 눈길이 가게 만들었다. 대통령 취임식 후 7870억 달러의 경기부양 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킨 오바마 대통령은 경기회복에 사활을 걸었다. 전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면서 그는 월가의 대형 금융기관에 대한 구제금융과 함께 경기부양책에 많은 국민세금을 쏟아 부었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지표상으로는 경제가 다시 꿈틀거릴 조짐이 엿보이고 있다. 6,000 선까지 밀렸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10,000 선을 회복했고,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1분기(1∼3월) ―6.4%에서 지난해 3분기(7∼9월)부터 플러스로 돌아서 지금은 2%대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번 없어진 일자리는 좀처럼 되살아나지 않았다. 실업률은 26년 만에 두 자릿수를 기록하고 있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실직자들의 불만이 높다. 여기다 2009 회계연도 재정적자는 사상 최고치인 1조4000억 달러다. 이런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이 ‘살진 고양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월가의 대형 금융기관들은 구제금융 덕분에 살아났으면서도 ‘보너스잔치’를 벌이고 있어 오바마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 성과 없는 외교정책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 첫해 20개국을 방문했다. 조지 부시와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이 임기 첫해인 1989년과 1974년 각각 15개국을 방문한 기록을 넘어선 최다 기록이다. 4월 체코 프라하의 ‘핵무기 없는 세상’ 연설, 6월 이집트 카이로의 ‘이슬람과의 화해’ 연설 등 전 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외교안보 정책을 추진했다. 7월에는 러시아를 찾아 리셋(관계 재설정) 외교에 나섰고 동유럽권 미사일방어(MD) 계획도 철회했다.

세계의 평가는 좋은 편이다. 전통적으로 미국과 사이가 나빴던 베네수엘라 리비아 등도 악수의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구체적인 성과가 잘 잡히지 않는 게 문제다. 전임 대통령 시절부터 해오던 테러와의 전쟁은 진행형이다. 아프가니스탄 전황은 악화된 감이 있고 파키스탄의 정국과 중동평화협상의 미래는 불투명해 보인다. 이란과 북한은 여전히 핵개발 속도를 늦추지 않고 있다. 관타나모 수용소도 아직 운영 중이고 수감자들의 신병에도 변화가 없다.

○ 풀리지 않는 한반도 현안

한미동맹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굳건한 편이다. 지난해 6월 미국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기존의 군사동맹 차원을 넘어 포괄적이고 전략적인 동맹관계로까지 넓히는 ‘한미동맹을 위한 공동비전’을 채택했다. 이어 지난해 11월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 북핵 일괄타결 방안에 이명박 대통령과 서로 합의했다.

하지만 북핵 문제는 뚜렷한 진전을 보지 못한 채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북미 양자대화를 주장하는 북한의 요구를 수용해 지난해 12월 8일부터 사흘 동안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특별대표를 평양에 보내 6자회담 재개와 9·19 공동성명 실천에 대한 공동의 이해를 이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친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전달되기도 했다. 그러나 6자회담 재개 시기는 불투명한 데다 북한은 선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하고 있어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역시 예민한 사안이지만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 2008년 대선 때 노조의 강력한 지지를 등에 업은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한미 FTA 재협상을 주장하는 자동차노조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데다 11월 중간선거까지 기다리고 있어 꼼짝달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식어가는 흑인들의 열정

헌정사상 첫 흑인 대통령을 만들어 낸 뒤 흑인들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는 대단했다. 2008년 대선에서 90% 이상의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흑인들은 지난해 1월 20일 혹한 속에 진행된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첫 흑인 대통령의 탄생을 자축했다.

여전히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흑인들의 지지는 높지만 점차 열정은 식어가는 분위기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다. 지난해 말 흑인 실업률은 15%대로 나타나 9%대인 백인보다 6%포인트 이상 높았다. 흑인들 사이에서는 “인생이 오히려 더 고달파졌다”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진보성향의 흑인 모임인 ‘블랙 이즈 백(Black is Back) 연대’는 지난해 말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흑인들 사이에서도 오바마 대통령에게 실망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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