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무역 다자협상으론 합의 불가능”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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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 넘는 나라의 이해관계 조정 어려워
뉴스위크 “주요국간 양자협상이 효율적”

유엔기후변화협약 제15차 당사국총회(유엔기후회의)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시하지도 못하고 끝나면서 다자간 협상의 효용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100개 이상의 국가가 모여 합의를 이끌어내는 다자간 협상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93개국이 참가한 이번 유엔기후회의만의 문제가 아니다.

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막을 내린 세계무역기구(WTO) 153개 회원국 각료회의에서도 다자간 협상의 ‘불통’은 확인됐다. 당시 회의는 비록 2001년 도하개발어젠다(DDA)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 차원이었다고는 하지만 구체적 성과를 하나도 남기지 못했다. 외신은 “WTO가 마비됐다(paralyzed)”고 혹평할 정도였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신호(21일자)는 “온실가스 감축에 전념하고 위험한 기후변화를 피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코펜하겐 회의’ 같은 절차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라며 유엔기후회의의 다자간 협상 방식을 비판했다. 뉴스위크 과학담당 편집장 샤론 베글리 씨는 “193개국이 한 두름으로 묶여 논의하는 식으로는 내년 회의에서도 유의미한 합의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자”고 주장했다. 다자간 협상은 ‘참가하는 모든 국가가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나라마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의 충돌을 조정하기 쉽지 않다는 약점이 이번 유엔기후회의에서 드러났다는 것.

이런 약점은 WTO 각료회의를 무기력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였다. 미 외교협회(CFR)의 국제무역 담당 선임연구원 마크 레빈슨 씨는 최근 발표한 ‘사라지는 WTO’라는 글에서 “WTO에 참여하는 국가 수 자체가 WTO가 직면한 골칫거리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레빈슨 씨는 “협상 테이블에 153개국이나 앉아 있다. 여기에 중국, 브라질, 인도 같은 신흥경제국은 세계무대에서 달라진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한다. 합의에 도달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다자간 협상의 대안은 양자협상일까. 뉴스위크는 기후협상 전문가 미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데이비드 빅터 교수의 주장을 인용해 “(온실가스 배출 등 기후변화에) 영향을 끼치는 몇 개 주요국 간의 양자협상, 또는 이들 국가로 구성된 클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과 중국, 또는 인도가 양자협상을 한다면 193개국이 우왕좌왕하는 유엔기후회의보다 더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합의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WTO의 경우는 양자협상, 혹은 지역 간 협상이 이미 대안을 넘어서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유럽연합은 역내 통합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일본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 집중한다.

중국은 동남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협정 체결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의 정책 우선순위에도 무역은 보이지 않는다. CFR의 레빈슨 씨는 “경제대국들이 원하지 않는 이상, 지구적 자유무역 확대를 위한 다자간 협상이 어떤 합의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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