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맥주회동’이 씁쓸했을 2人

  • 입력 2009년 8월 3일 02시 55분


‘흑인’ 표현 안쓰고 신고한 백인여성 “흑인만 강조” 오해 시달려
흑인교수 체포 지원출동한 흑인경관 “노예 엉클 톰” 조롱 받아

인종 차별이냐, 정당한 공권력 집행이냐는 논란을 불러왔던 미국 하버드대 흑인교수 사건의 당사자들은 백악관 뜰에서 맥주를 마시며 서로 상처를 보듬었다. 하지만 당사자들이 건배하며 모양 좋게 명예를 회복한 무대 뒤편에선 억울한 피해자가 여럿 나왔다.

이들은 바로 “남자 2명이 이웃집 문을 밀치고 들어가려 한다”고 경찰에 신고한 여성과 흑인 교수 체포 현장에 지원 출동했던 흑인 경관이다. 지난달 16일 오후 911(미국의 응급전화) 전화를 건 포르투갈계 미국인인 루시아 훨런 씨(40)는 “살아 있는 인종주의자의 표본”이라는 비난 공세에 시달렸다. 훨런 씨가 신고를 하면서 강도 용의자가 ‘흑인’이라고 강조한 것으로 잘못 알려졌기 때문이다.

비난을 견디다 못한 훨런 씨는 당국에 911 통화기록 공개를 요구했다. 진실은 훨런 씨가 흑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남자 2명이 (헨리 루이스 게이츠 교수의 집) 문을 밀치는 것을 목격한 한 할머니가 길을 가던 하버드 매거진 직원인 훨런 씨에게 자신은 휴대전화가 없다며 대신 신고해 달라고 부탁했다. 훨런 씨는 ‘남자 2명(택시운전사 포함)’이라고만 신고했고 접수 직원이 인종 등 인상착의를 계속 묻자 “추정하고 싶지 않다. 다만 한 명은 히스패닉계처럼 보인다”라고 대답해 줬다. 그러면서 “그들은 단지 (열쇠를 잃어버려) 문을 여는 데 어려움을 겪는지도 모른다”는 신중한 판단도 곁들였다. 게이츠 교수는 지난주 말 훨런 씨에게 감사와 위로의 뜻을 담은 꽃을 보냈다.

사건 당시 제임스 크롤리 경사가 게이츠 교수의 손에 수갑을 채워 끌고 나오는 장면을 촬영한 사진의 앞에 등장한 흑인 레온 래실리 경사는 이후 “엉클 톰(순종적인 노예라고 비꼬는 표현)”이라는 비난과 조롱을 받아야 했다. 그럼에도 래실리 경사는 사건 직후 기자회견에 등장해 동료인 크롤리 경사의 행동을 적극 옹호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쓴 편지에서 “나는 진실을 말했을 뿐이며 우연히 백인인 동료를 옹호한 것뿐인데 (같은 인종의) 배신자처럼 공격받았다”고 씁쓸해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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